노무현 대통령이 설익은 화두(話頭) 정치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최근 정치, 사회적 파장이 큰 화두를 잇따라 던졌지만, 현실성과 내용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혼란과 갈등을 부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노 대통령이 15일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한 시효 적용의 배제를 위한 입법을 제안한 것은 준비가 덜 된 의제 설정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동북아균형자론이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론도 비슷한 사례이다.
청와대측은 “과거 대통령처럼 최종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위한 의제를 던지는 것”이라며 통치 스타일 변화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정책의 최종 결정자인 대통령이 정제되지 않은 의제를 자주 내놓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의제 설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해당 부처, 청와대 참모, 여당 관계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가권력 남용 범죄와 인권 피해자들의 배상과 보상에 대해 민형사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처음에 청와대측은 시효배제 대상과 관련, “기본적으로 과거 사건들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가, 위헌 논란이 일자 뒤늦게 “배상ㆍ보상을 위한 민사적 시효의 배제 문제는 과거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형사적 시효 배제는 원칙적으로는 장래에 관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좀더 분명하게 설명했더라면 시효 배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참모들이나 법무부 등 해당 부처와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연설문을 작성했기 때문에 참모들이 해석을 잘못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연설문은 수석비서관들이 참여한 태스크포스에서 초안이 만들어진 뒤 대통령이 원고를 직접 수정하고 다시 독회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참모들과의 토론에서 법률적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노 대통령이 제의한 대연정도 한나라당의 즉각적 거부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2개월 동안 토론을 한 뒤 이 같은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연정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정당의 기류를 감안하지 않고 대뜸 연정의사를 공개한 것은 미숙한 처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노 대통령은 2월 취임 2주년 국회 연설 때부터 동북아균형자론을 설파했으나, 미국의 부정적 반응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야권의 비판으로 인해 균형자론을 거듭 보충 설명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 대통령은 당초 ‘우리 군대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거론했으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는 이후 경제력 등 연성 국력을 통한 균형자 역할을 강조했다. 최근 한두달 동안 노 대통령 발언에서 ‘균형자’란 말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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