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전문의 최성희(34) 박사는 게임계에서 SK텔레콤의 프로게임팀인 ‘T1팀’의 주치의로 통한다. 공식 직함은 아니지만 그는 주치의 못지않게 매월 한 두 차례씩 T1팀 선수들을 만나 건강을 챙긴다.
최 박사가 주치의로 불리는데는 프로게임계의 스타 임요환(25) 선수와 맺은 오랜 인연 때문이다. 그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2000년 임 선수를 알게 됐다. 당시 그는 남편이자 용인정신병원 전문의인 이명수(36) 박사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열심히 즐기며 임 선수의 팬이 됐다.
최 박사 부부는 당시 정신과 환자를 위한 사이버 축제를 기획하면서 임 선수를 초대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축제에 참가해 열심히 봉사해준 임 선수에게 감동한 두 사람은 이후 자주 만나며 나이를 떠나 절친한 친구가 됐다. 최 박사가 시합 때마다 열성적으로 응원을 하는 바람에 주변에서 그를 임 선수의 친누나로 오해를 한 적도 있다.
그때부터 최 박사는 임 선수의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장시간 모니터를 보는 탓에 눈이 많이 나빠진 임 선수를 위해 안과의를 통해 보안경과 안경을 맞춰줬다.
임 선수가 T1팀으로 옮긴 뒤 선수들의 건강검진은 자연스럽게 최 박사의 몫이 됐다. “몇 시간씩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보니 근육통과 척추질환을 호소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특히 기흉(가슴 흉막강에 공기나 가스가 차는 상태)으로 쓰러져 위독한 상태에 있던 선수를 급히 수술을 해 살린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요즘은 병원일 때문에 경기를 직접 보진 못하지만 케이블TV 등을 통해 경기를 보고난 뒤 전술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해 주기도 한다. “게임 실력은 임 선수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모니터링 해 줄 정도는 되요.”
최 박사는 “프로게임을 국가적인 e스포츠로 육성하려면 무엇보다 선수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선수들에 대한 가장 큰 복지혜택은 건강검진이에요. 지금 어느 팀도 정식 주치의를 두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주치의를 맡아 선수들의 건강관리를 해야 선수는 물론이고 프로게임이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그는 아울러 “팀 주치의에서 나아가 분야별 전문의가 망라된 e스포츠 후원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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