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 분단 60년을 맞은 한반도는 더 이상 동서 이념 대립의 전초기지는 아니다. 우리 민족이 원하지 않았던 분단과 뒤이은 전쟁은 한반도를 국제 분쟁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했지만, 냉전의 잔재는 씻겨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의 안보를 볼모로 잡고 있다. 핵 문제를 푸는 틀로 6자 회담이 마련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글로벌 외교의 무대인 뉴욕에서 열린 ‘제6회 세계한민족포럼’에 참석한 한ㆍ미ㆍ일 3국의 학자들에게서 6자 회담의 전망을 들어보았다. 좌담은 14일 이창주 국제한민족재단 상임의장의 사회로 케네스 퀴노네스 전 국무부 대북 담당관, 오코노기 마사오 (小此木政夫)일본 게이오(慶應)대 교수, 정옥임 선문대 국제유엔학과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밀레니엄 플라자 호텔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정리=김승일 워싱턴특파원 ksi8101@hk.co.kr
이창주 상임의장 =북한핵 관련 4차 6자 회담이 희망을 열었다는 견해와 휴회로 사실상 결렬됐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정옥임 교수 =6자 회담이 재개되고 북미간 양자 협의가 있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본질적 해결 가능성을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현 부시 정부는 과거 클린턴 정부 때의 합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다. 북한의 경수로 요구는 이란 핵 문제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미국이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북한 핵 폐기 및 평화적 핵 이용의 범위를 놓고 북미는 상당 기간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다.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휴회는 일단 휴식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회담이 재개돼도 결과는 조금 비관적이다. 한국 언론은 낙관적이나 그렇게 쉽게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미의 기본 입장에 본질적인 변화가 없다.
북한은 핵의 평화적 이용 가능성에 대해 최대한 애매한 상황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절대로 핵을 먼저 포기하는 식의 타결을 원하지 않는다. 부시 정부도 협상자세가 변하고 있지만 북한핵 절대 불용 입장에서 변한 것이 없다.
케네스 퀴노네스 전 대북담당관 =북미의 본질적 원칙이 달라진 게 없다는 데 동의한다. 부시 정부의 기본적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인데 이 목표를 이루는 데 전술적 방법만 바꾸고 있다. 이는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더 이상 군사적 방안을 말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탄력적 정책을 주문해 온 서울과 베이징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6자 회담의 교착이 미국때문 아니냐는 의회와 다른 나라들의 비판도 큰 부담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는 낙관적 요소들도 많다. 북미간 실질적 양자 협상 이외에 북한이 그들 자신의 제안을 내놓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젠 미국이 답할 차례다.
이 의장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이 회담 휴회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국제사회에서 핵주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북한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 아닌가.
오코노기 교수 =북한 주장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다. 북미 협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북한은 단계적 해결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선(先) 핵폐기는 리비아식 무장해제로 이어질 것으로 걱정한다. 북한은 핵의 단계적 폐기와 보상이 따르는 동시행동 원칙에 합의한 클린턴 정부 때로 돌아가고자 한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까지 포기 받으려면 동시행동 원칙을 인정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단계적 방안을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타협은 어렵다.
정 교수 =북의 평화적 핵 이용권 주장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경수로 요구인지, 핵확산금지조약(NPT) 상의 권리인지가 애매하다. 북한은 별개로 생각하지만 한국 정부는 전력지원은 경수로 대신이라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경수로가 최선의 선택이나 미국의 절대 반대로 현실성이 없다. 회담 재개 후에도 희망적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퀴노네스 전 담당관 =경수로 요구는 북한측이 회담 시작 한달 전에 이미 뉴욕 채널을 통해 미측에 제시했던 사안이다. 그런데도 왜 힐 차관보가 북한의 경수로 요구를 회담 휴회원인이라고 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의장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회담에서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을 말했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퀴노네스 전 담당관 =그것은 국무부 입장이었다. 부시 정부 2기 들어서도 아직 국방부와 국무부의 입장엔 차이가 있다. 협상 경험이 많지 않은 힐 차관보가 실수한 것이다. (한국 언론이 힐 대표에게 재량권이 있다고 보도하는데) 왜 그렇게 쓰는지 모르겠다.
어느 나라든 외교관에게는 권한이 없다. 미국 대표는 항상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협상한다. 부시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회담 시작전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모여 기본 입장을 결정했다.
이 의장 =한국의 전력공급 제안이 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견해가 있다.
오코노기 교수 =일본과 중국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특징인 북미 양자 협상 속에서 한국이 일정한 역할을 하려했지만 성과를 속단할 수 없다. 북한은 경수로와 전력을 모두 달라고 한다. 한국 정부의 생각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불안감이 있어 송전보다는 경수로를 갖고 싶어 한다.
퀴노네스 전 담당관 =북한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평양은 서울이 언제든 송전을 끊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미일도 그 제안에 유쾌하지 않다.
미측은 정동영 장관이 제안을 북한에 먼저 설명한 것에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정 장관이 워싱턴에 왔을 때 라이스 국무장관은 그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서야 겨우 10분의 시간이 잡혔다. 일본도 자신의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달리 할 수 있었던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의장 =북한 핵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오코노기 교수 =부시 정부는 북한의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고 기대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그 기대를 버릴 때 진정으로 협상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전략적 변화가 생긴다. 전쟁 위협을 제기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기 보다는 완전하지 않은 합의라도 해서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일본의 입장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한일과 같은 비핵보유국가로서는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과 미사일 기술의 결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70%, 80%, 수준의 합의라도 해서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할 수 있으면 그게 도움이 된다. 한일의 이해관계는 미국과 다르다. 핵대국인 미러는 북한의 핵 수출만 막으면 되나 한일은 북한의 핵보유 그 자체가 위협이다.
정 교수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 문제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미국도 북한의 NPT 복귀 등 일정 조건 아래서 경수로 사용 권리를 허용하는 것이다. 통일후 까지 생각하면 우리로서도 북의 경수로 건설이 좋다. 그러나 북미의 완고함이 문제다.
경수로 재건설시 한국의 비용 부담도 걸림돌이다. 그래서 북미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 국제금융지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그러나 미국은 선 핵포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다. 회담이 재개돼도 시간을 끌 수 밖에 없다.
퀴노네스 전 담당관 =부시 대통령은 도덕적 가치 기준에 따라 북한 정권을 압박하려 했지만 결과를 보라. 평양 정권은 건재하고 부시 정부가 변화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것은 주변국 모두가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북 지원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도 대북지원 중단 요구에는 완고하다.
이 의장 =북한은 부시 정부가 군사적 행동을 못할 것이라고 판단, 남은 기간을 버티고 본격적인 협상은 미국의 다음 정부와 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퀴노네스 전 담당관 =오히려 협상을 지연하려는 쪽은 미국이다. 미국은 이라크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여력이 없다. 서울과 베이징은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는 매우 현명한 전략을 짰다.
북한이 그런 경제적 혜택을 무시하고 더 이상 협상 테이블을 거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점에서 나는 향후 전망이 밝다고 본다. 미국이 회담을 지연하는 상황이 이어질수록 북한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여건을 더 많이 갖게 된다. 핵무기를 더 많이 갖게 되고 주변국의 미국에 대한 압력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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