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는 순만 죽죽 뻗고 열매는 잘 맺지 않는 호박을 야단쳐 열매를 맺게 하는 어느 할머니와 내 어린 시절 봄마다 나무에게 그 나무가 맺어야 할 일년 농사에 대해 조곤조곤 일러주던 우리 할머니에 대해 얘기했다.
그런데 얘기를 하고 보니, 나 역시 어린 시절 내 주변의 자연과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감자를 심거나, 어른들이 가르쳐준 대로 호미를 들고 나가 논둑에 콩을 심으면서, 또 밭을 매거나 꼴망태를 채우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내 말을 알아듣듯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곡식이나 풀에게 뿐 아니라 내가 자연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게 된 것은 도시에서 올라와 소설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작품 속에서는 온갖 것들을 다 ‘의인화’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정작 내 가까이 있는 자연에 대해서는 조금씩 무덤덤하게 말을 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제 다시 의식적으로라도 나무와 풀과 바람과 꽃과 별과 햇빛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내 방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래. 와줘서 고마워.” 하고 인사를 했더니 그 바람이 종일 내 방을 방문했다. 저녁엔 바람과의 대화로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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