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국정원(옛 안기부) 도청사건 수사가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 도청조직인 미림팀에 대해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반면,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 의혹은 수사방향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움직임이 미미하다.
DJ 정부 시절 도청 의혹은 미림팀의 경우와 달리 도청테이프나 관련자 진술 등이 확보되지 않아 애초 수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지만, 무엇보다 국정원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11일 국정원에서 미림팀과 관련된 260쪽 분량의 자료를 넘겨받고, 이후 국정원의 협조로 미림팀과 관련된 전ㆍ현직 직원들을 소환 조사했다. 15일에는 전 안기부 국장급을 불러 미림팀 재조직 경위를 중점 조사했다. 단계별로 도청 지시 배후에 접근해가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DJ 정부 도청 수사는 아직까지 휴대폰 도ㆍ감청이 가능한지, 어떤 경위로 감청장비를 구입했는지 등 주변 수사에 머물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국정원이 넘긴 자료가 너무 부실해서 우선 자체적으로 무엇을 수사할 수 있는지 궁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지난 5일 자체 조사결과 발표 때 DJ 정부 때도 도청이 이뤄졌다고 고백했으나, 이를 입증할 구체적 진술이나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검찰에 넘긴 자료도 발표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국정원의 자체 조사가 부실했거나, 조사를 하고도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은 DJ 정부 때의 도청은 합법감청에 끼워넣기 식으로 이뤄져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고 설명하지만, 조직 보호 본능이 강한 국정원 생리상 내부 반발이 적지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미림팀 도청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국정원으로서도 별 부담이 없지만, DJ 정부 시절 도청은 관련 직원들이 아직 현직에 남아 있어 혐의가 드러나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미림팀 부분만 열심히 수사한 뒤 기소도 못하고, DJ 정부 시절 도청에 대해서는 변죽만 울리다 수사가 끝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공소시효를 살짝 넘긴 혐의만 실토해 검찰을 헛수고 하게 만드는 것은 피의자들이 종종 쓰는 수법이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의 배임 사건을 수사하면서 3~4명의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조씨의 진술을 받아냈다.
그러나 수개월간의 수사 끝에 공소시효가 모두 지난 것으로 밝혀져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조씨의 전략에 말려든 것 같다”고 허탈해 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