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불법 도청 테이프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여야는 국회에서 이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집권여당은 이른바 특별법안을, 야당은 특검법안을 각각 제출하였다. 여야는 서로 상대방의 법안이 갖는 위헌성과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과연 국회가 법을 만드는 입법부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국가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불법도청행위가 사실로 확인되었고 이로 인하여 국민의 사생활이 무참히 침해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제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불법행위를 규명하여 관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국회가 할 것은 수사의 책임기관인 검찰이 철저히 수사를 하도록 촉구하고 감시를 하는 것이다. 나아가 만약에 현행의 법제도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애가 있다면 앞으로를 위하여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론 의식해 여야 정치공방만
그러나 지금 여야가 앞 다투어 특별법과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과연 이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론을 의식하여 국회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흉내나 내자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우리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일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그러한 고려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러기에 포퓰리즘이 더욱 맹위를 떨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이 법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원칙의 중요성에 있다. 이 시점에 국회가 강조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이나 특검법이 의도하는 바는 적법절차를 위반했기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불법증거의 내용을 어떻게 공개하며 어느 범위까지 공개하느냐는 등으로 논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또 다른 정치공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별법과 특검법이 갖는 여러 문제점들은 이미 서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 그 자체에서 반증되고 있다.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이나 적법절차의 원칙, 사생활보호의 원칙, 형평성의 원칙, 또는 권력분립의 원칙 등 여러 헌법상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우리가 고문에 의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범죄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범인의 죄질이 너무나 흉악하거나 또는 국가의 중대한 안위에 관계되기 때문에 형사절차상의 보호를 허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적법절차의 원칙은 무의미해 진다. 언제든지 그럴듯한 이유로 고문이 합법화되고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도청사건에 대한 국회의 대처에 유감을 갖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특별한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별한 입법조치로 불법도청의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불법도청을 허용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은 불법도청을 하다가 내용을 보아, 정치권의 정치적 고려에 따라, 사례별로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게 된다.
국회가 정작 이 시점에 해야 할 것은 앞으로 국가기관에 의한 이러한 불법도청이 재발할 수 없도록 더욱 철저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공무원의 불법감청에 대한 형의 가중, 공소시효 연장, 또는 합법적인 감청 범위의 확대 등을 위한 입법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지금 여야의 특별법과 특검법 공방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전가 식의 정치적 공방전으로 끝나 버릴 공산이 크다. 출발부터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적법절차의 원틱 따라 입법해야
국회는 지금부터라도 입법부로서 법의 원칙에 입각한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헌법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을 알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한 여러 기교로서 이른바 특별법과 특검법을 만든다는 것은 법률만능주의의 전형이다. 국회의 무분별한 입법활동은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더 키우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대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