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의 8ㆍ15는 매년 그래왔듯이 두얼굴을 보여줬다.
이날 오전 11시50분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기타노마루 공원 내 부도칸(武道館)에서는 일본 정부가 주최하는 전국전몰자추도식이 개최됐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310만의 전몰자 유족 등 7,500여명이 참가한 추도식에서 아키히토(明人) 천황은 “역사를 되돌아보며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절실히 바란다”고 말해 장내를 숙연케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며 “일본이 세계의 신뢰를 받는 국가가 되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 역시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는 ‘종전 60주년 국민의 집회’라는 행사가 열렸다. 고이즈미 총리의 8ㆍ15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촉구한 이 집회는 ‘영령에게 대답하는 모임’등 일본 극우단체가 마련한 것인데 국회의원과 우익단체 회원 등 6,000여명이 참여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특히 오쓰지 히대히사 후생성 장관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성 장관이 이날 오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성 장관은 전날 고이즈미 정권 각료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를 참배했다. 당파를 초월한 국회의원 83명(대리자 포함)도 이날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이들은 일본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A급 전범이 합사돼 있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야스쿠니를 참배하고 나오면서도 입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일본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후 60년을 맞으며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본 언론들이 그나마 이 같은 일본의 분위기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날자 사설에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를 둘러싼 움직임, 자위대를 군대로 만들려는 개헌론 등이 이웃나라에 불안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극우지 산케이(産經)신문을 제외한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마이니치(每日)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 중 43%가 자신들의 전쟁을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응답은 29%, ‘모르겠다’는 26%에 달하는 등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일본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 교육이 왜 필요한지 웅변해주는 대목이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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