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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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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

입력
2005.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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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에서 작가 최인호 씨는 “문학이란 세상의 고통에 감응하는 하소연의 눈물”이고, “문학행위는 신의 창조행위의 모방”이라 했다. “작가로서 나의 마지막 소망은 내가 불어넣는 입김에 영성(靈性)이 깃들이기를 바랄 뿐이다.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었듯이.”

그는 을유년(1945년) 해방둥이이며, 63년 고교생 작가로 등단했다. 올해로 만 60세가 됐고, 작가 이력 43년째를 맞았다. 그간 그는 세상의 고통에, 성실하게, 멋있게, 그래서 고맙게 감응해왔다.

IMF관리체제 하의 힘겹던 시절 소설 ‘상도(商道)’로 문학의 위력을 과시한 바 있는 그는, 최근 죽은 공자(孔子)를 피노키오처럼 살려냈고, 그 소설 ‘유림(儒林)’은 근래의 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국소설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다. 특히 10~20대 젊은 독자층이 50~60대 못지않게 두텁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정신적인 것에 대한 빈곤과 갈증을 반영한 것이겠다.

해방 60년을 맞는 그의 소회는 사뭇 무겁다. 그것은 이 세상의 고통이 여전하고, 그 고통에 감응해 흘릴 눈물이 그만큼 더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1945년 9월 2일.

미전함 미주리 선상에서는 20분이 채 안 걸린 제2차 세계대전 항복문서 교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두터운 구름이 걷히면서 밝은 햇살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이는 문서에 서명을 막 끝낸 맥아더는 “이제 우리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 승전국이나 패전국 모두에게 그러한 전쟁의 종결만이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길이다”라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음과 같이 연설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나의 신성한 소망입니다. 사실 전인류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엄숙한 기회로 인하여 더 나은 세계가 과거의 피와 살육을 딛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믿음과 이해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세계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유와 인내와 정의에 대한 소망이 완성되기 위해 헌신하는 세계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평화가 이 세상에 다시 찾아오고 하느님이 언제까지나 평화를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맥아더의 연설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남으로써 과연 피와 살육을 딛고 더 나은 세계가 찾아왔는가. 자유에 대한 소망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평화가 찾아왔는가.

아니다.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1945년 2월, 세계대전 중에 얄타에서 모였던 미국의 루트벨트와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은 나치독일의 최종패배 후 독일에 관해서 이 강대국들이 점령한다는 원칙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의해서 세계대전이 완전 종식되었으나 일본은 독일처럼 서독과 동독으로 분할 점령되지 않고 그대신 식민지조선이 남과 북으로 신탁통치되어 분할되었다. 당연히 북일본과 남일본으로 분할 점령되었어야 할 일본은 조선반도를 희생양으로 기사회생하는 것이다.

그 뿐인가.

그로 인해 조선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시험하는 쇼 윈도로 전락해 버렸다.

얄타회담 중 교황 비오 12세의 견해를 묻는 중요한 문제가 대두하자 “교황은 몇 개의 사단을 거느리고 있습니까”하고 대답한 전쟁의 광신자 스탈린은 북한에 소련군을 주둔시킴으로써 북한을 공산주의의 견본시장(見本市場)으로 장식하고, 미국은 남한에 군정을 실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슈퍼마켓으로 치장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민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그 이데올로기에 대리전의 용병으로 차출되어 6ㆍ25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폭탄보다 더 강력한 폭탄물을 국지에 불과한 한반도에 집중 투하함으로써 600만 이상의 살상자와 이재민을 낳는 인류 대참사의 비극적 현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비극보다 더 잔인하였던 것은 이 전쟁이 형이 동생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동전상잔의 더러운 전쟁(Dirty War)라는 점이었다. 이 더러운 전쟁은 민족의 동질성과 단결심을 촉구하는 전쟁의 속성과는 달리 인간의 존엄성과 인륜을 저버린 패덕(悖德)의 정신적 상처를 한민족에게 안겨 줌으로써 마치 우리 자신이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종(食人種)에 불과하다는 씻을 수 없는 수치감을 각인시켜 주는 참극이었던 것이다.

이 더러운 전쟁은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려는 독재의 수단으로 교묘하게 이용되어 왔다. 전 국민을 기쁨조의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 북한에서는 국가 전체를 거대한 수용소로 만들어 버렸으며 남에서는 지역적, 계층적 갈등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상처를 입히는 이데올로기의 내홍(內訌)을 겪게 하였던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에서 해방되어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아직도 수직적인 사상갈등과 수평적인 내분으로 안팎이 갈갈이 찢긴 영혼?불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아, 광복은 왔으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전쟁은 끝났으나 평화 역시 오지 않았다. 구속에서 풀려났으나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식민에서 벗어났으나 독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단 하나 남은 분단국가 한반도. 이 분단이 극복되고 한민족에게 진정한 해방과 통일이 오는 평화야말로 인류가 가진 숙제이자 화두(話頭)이니, 시인 신동엽(申東曄)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의 시는 아직도 미망(迷妄)에 잠들어 있는 우리의 뇌리를 강타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4월의 혁명과 동학의 민족혼을 초혼하고,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한반도에서 모오든 쇠붙이를 몰아내는 일이다. 아아, 쇠붙이, 우리민족은 얼마나 쇠붙이의 사슬에서 노예가 되었던가. 총과 칼의 쇠붙이, 권력과 고문의 쇳조각, 쿠데타의 탱크, 권력을 유지하려는 철권, 입에 물리는 재갈, 두 손을 채우는 수갑, 노려보는 증오의 눈빛, 수용소의 철조망, 지뢰밭의 비무장지대, 더 가지려는 욕망의 수전노, 탈북자의 발에 꽂아 꿰는 철사,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펜촉, 번득이는 목걸이, 팔찌, 귀고리, 도청의 금속기계,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 아아, 쇠붙이들이 우리 민족을 로봇 으로 만들었구나. 기계인간의 터미네이터로 만들었구나. 이러한 껍데기의 모오든 쇠붙이는 가고, 향기로운 흙가슴과 한민족 특유의 부끄러움으로 가야 하느니.

자 이제는 가자. 중립의 초례청(醮禮廳)으로 가자.

석가탑을 만들던 아사달이 그리워 찾아온 아내를 거절하자 “지성으로 빈다면 탑 그림자가 못에 비칠 것이오. 그러면 남편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오”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못을 들여다보며 탑의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던 아사녀. 기다리다 기다리다 오지 않는 절망 속에 그대로 임의 이름을 부르며 죽었던 아사녀. 그 후부터 석가탑은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는 무영탑(無影塔)이 되었다던가.

이제 아사달과 아사녀를 초례청에 함께 세워서 새롭게 맞절하도록 혼인잔치를 벌이자.

그리하여 흙 다시 만져보고 바닷물도 춤을 추는 ‘신광복절’을 맞이하자.

그림자조차 없어져 무영인간(無影人間)이었던 우리 민족의 찬란한 그림자를 온 천하 만방에 드리우자. 이제야말로 진정한 제2의 해방을 맞이할 때가 되었으니, 껍데기는 가라. 우리를 짓밟았던 공산주의여, 제국주의여, 체제여, 반체제여, 전라도여, 경상도여, 가라. 이승만이여, 박정희여, 김일성이여, 빨갱이여, 볼셰비키여, 양키즘이여, 38선이여, 핵폭탄이여, 어두운 망령들이여, 이제 그만 가라. 우스꽝스러운 허수아비들이여, 껍데기는 가라.

모오든 쇠붙이의 껍데기는 가고, 제2의 광복이여, 어서 우리에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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