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되면 우리는 일본을 생각한다. 광복 60년이 되는 올해 한국에는 다시 친일과 반일의 담론이 무성하다. 새삼스레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광복 후 일본은 한국민의 증오와 반목의 대상이었다. 식민지 지배의 굴욕을 넘어서서 민족사의 명맥을 가다듬기 위해 반일은 한국인의 마음을 달래는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한 해방후 1세대들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과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은 강요된 선택이 아닌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이자 자기정체성의 근간이었다.
국민감정을 뒤로 하고 상호간의 실리추구를 위해 한일간 국교정상화를 이룬 것은 광복 후 20년이 지나서였다. 마음의 앙금을 가라앉힌 것은 아니었지만, 청구권자금의 유입을 통해 한국은 경제발전이라는 근대화의 성과를 이루고자 했다. 대중적인 반일무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본에서 받은 기술과 자금으로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극일’의 논리로 일관했다. 극일 역시 마음에 생채기진 상처를 치유하려는 승화된 노력의 하나였다. 경제성장노선의 추구는 정서적인 반일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한일이 체제상 동질성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냉전이 끝난 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은 체제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각기 20세기적 비정상국가를 탈피하려는 정치적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비정상성을, 일본은 절름발이 동맹관계와 일국평화주의라는 비정상성을 넘어서고자 한다. 그 여파로 북한을 보는 눈과 과거사를 해석하는 눈이 달라지고 있지만, 동시에 동아시아시대에 발맞추어 한 단계 높은 한일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구축을 위해 우리는 단순하게 반일의 논리에 함몰되거나 친일의 굴레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을 알고 일본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지일(知日)’의 자세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이기 때문에 문제를 확대 해석하거나 일부러 작게 보려는 습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반일이나 친일이라는 일차방정식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일본의 모습을 등신대(等身大)로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일본이 한국을 침탈하려 한다는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한국은 더 이상 19세기적 제국의 희생양이 될 만큼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민주질서와 시장경제를 가진 나라에 대해 21세기적 국제질서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목소리를 높여가는 우익의 움직임을 보며, 일본 전체가 전전의 군국주의로 회귀하려 한다고 보는 것도 편향된 시각이다. 일본 내에는 혐한감정을 가진 우익이 있는가 하면, 한일간의 우호를 중시하는 보수도 있고, 아시아를 중시하는 진보도 있다. 친구와 적을 구분하지 않고 일본 전체를 몰아세우는 획일적 논리로 일관할 경우 일본 내 우호적인 세력마저 우리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새로운 한일관계를 여는 가치의 잣대는 ‘보편성’이어야 한다. 앞서가는 일본에게 마냥 배우면 된다는 친일의 논리도 이제 통용되지 않고, 일본이라면 무조건 핏대를 내는 과도한 애국심도 국제적인 상식에 위배된다. 오히려 한국이 국제적인 보편성을 몸에 익히고, 보편적인 잣대의 기준 위에서 일본 내 일부세력에 존재하는 편협성과 오만함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부끄러운 일본의 특수성을 끄집어낼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상식과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우리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박철희(朴喆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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