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70만원. 지난해 무궁화와 관련한 중앙정부 예산이다. 나라꽃 무궁화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호만 무성할 뿐 법률의 부재, 정책의 비일관성, 탁상 행정 등으로 국민의 ‘무궁화 사랑’이 갈수록 식어가고 있다.
국가 상징물의 하나인 무궁화에 대한 관리는 행정자치부 의전과가 맡고 있다. 무궁화 선양(宣揚)계획, 애호운동 등을 수립하고 추진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뚜렷한 법률적 근거가 없다. 다른 국가 상징물인 국기, 국새(國璽), 국장(國章) 등은 대통령령에 의해 관리가 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북한은 헌법 부칙에 목란(木蘭)을 국화로 못박아 놓았다. 통일 이후 국화 선정 과정에서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품종개량, 식재 등 실제적인 무궁화 보급은 산림청에서 맡고 있다. 산림청은 1983년부터 ‘무궁화 1,000만 그루 심기 계획’을 시작해 93년까지 전국적으로 2,500여만 그루를 심는 성과를 거뒀다. 91년부터는 무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8ㆍ15 광복절에 맞춰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전국 무궁화 품평회, 글짓기, 사진전시회 등으로 구성된 ‘나라꽃 무궁화 큰잔치’를 열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 무궁화 보급 후 사후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개체 특성상 추위와 진드기 등 병충해에 약한 무궁화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산림청은 그 책임을 각 지방자치단체로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나라꽃 무궁화 큰잔치’에 들이는 매년 8,000여만원의 예산이 무궁화와 관련해 정기적으로 중앙정부가 지출하는 예산의 전부다. 올해 15회를 맞은 이 행사도 내용이 매년 거의 비슷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에서의 개최를 고집하는 등 ‘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신경한 탁상 행정도 문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행자부는 전국 월드컵 경기장에 무궁화 화분 보급을 위해 55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월드컵 기간인 5,6월에는 무궁화가 피지 않는데도 한 그루에 17만원이나 들여 억지로 개화시키려했던 것. 이 계획는 결국 중단됐는데, 행자부는 이 때문에 시민단체로부터 대표적인 예산 낭비라는 의미의 ‘밑빠진 독’상을 받았다. 온라인을 통한 무궁화 홍보 계획은 전무한 상태. 지난해 초 한 민간단체가 지적하기 전까지 ‘www.mugungwha.co.kr’이라는 인터넷 주소는 포르노 사이트로 연결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한국무궁화연구회 박춘근 이사는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는 행자부 산하 국가상징자문위원회를 활성화해 정부가 무궁화 선양에 대한 민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국화발전연구원’ ‘무궁화 표준품종원’ 등 무궁화 정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전문기관 설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신기해 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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