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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 특별인터뷰/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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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 특별인터뷰/ 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

입력
2005.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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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金俊燁ㆍ85) 사회과학원 이사장은 항일독립운동과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원로다. 한국일보와의 특별인터뷰에서 김 이사장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우리가 갖춰야 할 자세를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인터뷰는 5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사회과학원에서 이루어졌다.

_ 광복 60년의 의미와 개인적 소회부터 듣고 싶습니다.

“벌써 60년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을 때는 시간이 너무도 더디던데. 광복절은 우리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종식, 식민시대의 종말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또 다시 주권을 잃어서는 절대로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려면 왜 나라를 잃었는지, 왜 침략을 당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일본 게이오(慶應)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충칭(重慶) 임시정부를 찾아가던 때가 기억납니다. 살아서 돌아오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생명을 부지했으니 개인적으로는 행운이었지요.”

_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이 시대의 한국인들은 잘난 조상입니까 못난 조상입니까.

“민주주의도 하고 경제도 상당히 발전시켰으니 70점 정도는 주고 싶군요. 정치가 기대만큼 되지 않는 게 아쉽고, 문화수준도 좀더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통일까지 이룬다면 100점이겠지요. 그래도 우리 민족은 재간있고 근면하고 상승욕과 성취욕이 강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이미 한류열풍이 불고 황우석 교수 등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_일본은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일본은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세대는 일본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바로 이웃에 있기 때문에 평화로운 선린관계 유지가 중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두 나라는 평화롭게 지낸 기간이 더 깁니다. 다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보다 선진국이었다는 것이지요. 일본은 강한 나라에 굽신거리고 약한 나라는 깔보는 속성이 있는데, 선린관계를 유지하려면 앞선 나라가 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라도 한 가지 경계할 것은 북한의 핵 개발입니다. 일본은 헌법을 고쳐 자위군을 두고 해외파병도 하겠다고 하는데, 그 구실이 바로 북한의 핵 개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_ 한중일 3국은 동일 문화권인데도 갈등이 심합니다. 동북아 통합은 필요하고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원래 지정학적으로 갈등은 가까운 나라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서로 반목하면서 살자는 건 아닙니다. 평등, 호혜, 평화공존의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평화공존도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국민수준이든 문화든 국력을 길러야 합니다. 해방 이후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고 소성(小成)에 만족하면 안됩니다. 내부적으로 결속하고 준비를 단단히 하면 국력이 상승하고 이웃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 통합은 급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_ 그런 점에서 우리 역사교육에는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요.

“정치인들도 역사를 잘 모르고 역사교육도 부실합니다. 중국은 모든 학과에서 최근세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수감돼 있던 뤼순(旅順)감옥에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사마천(司馬遷)의 사기를 인용해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ㆍ지난 일을 잊지 않으면 뒷 일의 스승이 된다)’라는 비석을 세웠더군요.”

-중국으로부터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중국은 제지법 화약 나침반을 발명했고 명(明)의 정화(鄭和)는 동남아 인도양 아프리카까지 탐험했습니다. 창의력과 문화 창조능력, 진취성이 뛰어난 민족입니다. 그것을 배워야지요. 느긋한 성격도 배워야 합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첫 방미기간에 TV대담을 하면서 대만 통일에 대해 ‘50년, 안되면 100년, 200년 후에라도 하면 된다’고 말하는 걸 보고 좀 놀랐습니다. 우리는 늘 통일이 곧 될 것처럼 하면서도 아직 통일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도 배울 게 있겠지만 우리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특별히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_ 지금까지 중국에 한국학을 보급하고 진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셨는데요.

“우리나라와 중국은 여러 면에서, 특히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교과서문제 등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응해 협력할 일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중국은 밀접한 관계였고 앞으로 더 밀접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내 외국 유학생이 10만명 쯤 되고 그 가운데 5만명이 한국 학생입니다. 옛 신라방(新羅坊ㆍ신라인 거주지역)의 재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중국학생 9,600명 정도가 와 있다고 하네요. 양국의 서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중국 내 한국학 보급에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김 이사장은 올해에도 한국전통문화 학술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9~14일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_ 한국사회는 이념대립, 지역문제, 빈부 격차 등으로 내부 결속이 어렵습니다.

“나는 일군에서 탈출하는 순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자유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싸운 이유도 결국 자유를 위해서였지요. 맥아더동상 철거나 미국에 대한 생각도 이런 시각에서 보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전 당시 미국의 힘이 없었으면 북한의 상대가 안됐겠지요. 그러나 이념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등 옛 사회주의권이 모두 변하지 않았습니까. 국제정세와 세계사의 조류를 알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봅니다. 빈부격차는 인류가 생존하는 한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복지정책을 통해 격차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문제도 교육과 위정자의 배려가 있으면 못 고칠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에게는 종교갈등이 없는 거지요. 지금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과 대립이 얼마나 심합니까?”

_ 최근 입시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서울대의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교육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비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가 없으면 대학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대학의 권위는 나라의 독립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투쟁해서 얻어야 합니다. 서울대의 용기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른 대학도 호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간섭하고 통제하면 대학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대학은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예측하고 미리 준비해 양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됩니다. 평준화도 말은 그럴 듯 한데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그 동안 입학제도가 수없이 변경됐지만 그 결과가 이 모양 아닙니까?”

_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남지 않았습니다. 중간평가를 해 주십시오.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합니다. 노력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 즉 민생부문을 좀더 많이 챙겼으면 합니다. 모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지 않습니까. 국방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강도 해이해져 있고. 일본이 독도를 무력점령이라도 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보국안민(保國安民) 부국강병(富國强兵)이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_ 다음 대통령은 어떤 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비전있고 능력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지요. 또 국제정세를 잘 알고 보국안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도덕성 있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해야 합니다. 과거 친일파나 좌건 우건 독재정권에 협력했던 사람은 안 됩니다.”

김 이사장은 요즘 중국 베이징(北京)대 진염(陳炎) 교수(91)의 저서 ‘해상실크로드와 중외문화교류’(海上絲綢之路與中外文化交路)를 읽고 있다. 바다에도 실크로드가 여럿 있었다는 것을 처음 학문적으로 규명한 책이다. 김 이사장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이 ‘나의 소원’을 통해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이라고 했던 말씀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소원을 피력했다.

“나의 소원은 무엇인가-. 부강한 나라, 세계에서 존경받는 민족, 인류문화의 발전과 행복의 증진에 기여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리=박광희 차장대우 khpark@hk.co.kr

인터뷰=임철순 편집국장 ycs@hk.co.kr

● 김준엽 이사장은 中 11개大 명예교수 활동

1920년 평북 강계 출생. 1944년 일본 게이오대 동양사학과 재학 중 징병됐다가 탈출, 장준하(張俊河) 등과 함께 충칭 임시정부로 가 광복군에 가담했다. 지청천(池靑天) 광복군 총사령관, 이범석(李範奭) 광복군 제2지대장 등의 부관을 지냈다. 46년 난징(南京) 중국국립동방어문전문학교의 전임강사로 교육계에 발을 디뎠으며 49년 귀국, 고려대 조교수가 됐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을 거쳐 82년 고려대 총장에 취임했으나 정부의 압력으로 85년 사임했다.

55~62년 월간 '사상계' 편집위원, 주간, 부대표, 61, 62, 74년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활약했다. 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 89~99년 대우학원 이사장을 거쳐 88년부터 재단법인 사회과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현재 고려대와 베이징대 등 중국 11개 대학의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 국민훈장 동백장ㆍ모란장, 건국훈장 애국장, 독립운동유공표창, 건국포장,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 2000년에는 중국 교육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는 '중국공산당사' '중국최근세사'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중공군의 장래' '중공과 아시아', 회고록 '장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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