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는 ‘빛나는 산’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최고봉(5,892m)인 이 산의 만년설이 적도의 태양으로 찬란하게 빛날 때 사람들은 경외감에 휩싸인다.
적도 설산의 매력에 연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지만 조만간 찾는 발길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2020년 이후에는 빙하와 만년설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관측에 의하면 1912년 이후 이 산의 빙하와 만년설이 약 80%가 이미 녹아 없어졌다고 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보고에 의하면 이 같은 현상은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 온난화가 주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만년설을 지키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고 한다. 런던대학의 환경전문가 니스벳 박사와 세계적인 포장 전문가 크리스토씨는 고강도 필름이나 섬유를 만드는 데 쓰는 폴리프로필렌으로 산 정상을 덮으면 얼음과 눈은 차가운 상태로 보존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교토의정서 체제 흔들
문제는 킬리만자로만이 아니다. 엘니뇨 현상, 해수면 상승, 동해의 어종 변화 등 생태계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산화탄소, 메탄, 프레온 등의 온실가스 감축에 합의하여 세계 154개 국이 ‘교토의정서’에 가입해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인 우리나라도 1993년에 이 협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최근 이 교토의정서 체제에 이상 조짐이 생기고 있다. 미국이 주도가 되어 지난달 28일 ‘기후변화에 관한 아ㆍ태 지역 파트너십’을 결성한 것이다.
이른바 ‘신 파트너십’에는 우리를 비롯하여 미국, 중국, 인도 등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48%를 배출하고 있는 6개 국이 참여하고 있다. 신 파트너십이 교토의정서와 크게 다른 점은 온실가스의 의무적인 감축 대신 기술 개발을 통하여 자발적으로 감축하겠다는 점이다.
참여국들은 국익을 최대한 지키겠다는 명분이 있어 보인다. 교토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전 세계 총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교토의정서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경제 발전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뒤늦게 합류한 일본의 경우는 환경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어서 어느 체제든 지속적으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나갈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6개 국 중 한국의 참여에 대해서는 나라 안팎으로 의아해 하는 분위기다. 양 체제에 모두 가입함으로써 당장은 이익이 뚜렷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번 신 파트너십 참여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판단과 방향 정립이 필요하다.
우선 ‘신 파트너십’이 ‘교토의정서’ 체제를 대체하거나 틀을 깨는 방향으로 작용하여서는 아니 될 것으로 판단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세계적 노력이 이 두 가지 체제로 양분된다면 ‘우주선 지구호(Spaceship Earth)’의 순항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기업들도 환경 경영 체제를 갖추는 것만이 새로운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 대상국이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환경=경쟁력" 인식해야
끝으로 정부는 기업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흔들림 없는 의지와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수소에너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등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한 국제적 공동연구에도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번 신 파트너십 참여가 정부의 환경 정책을 명확히 정립하고 부족한 첨단 환경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의 촉진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후손에게 킬리만자로의 빙하와 만년설을 전설로 남겨주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유희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