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과거의 원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림팀의 불법 도청 사건이 터져 YS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안긴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11일에는 박철언 전 의원이 “1990년 3당 합당을 전후해 40억원 이상을 직접 전달했다”고 폭로했다.
민주화투쟁의 상징이자 문민 시대를 연 YS가 이렇게 상처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도청으로 깊이 패인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인 박 전 의원의 폭로도 한편으로는 얄미워 보인다. 당시에는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돈을 건넨 자와 받은 자의 공소시효가 다 지난 지금,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음습한 과거를 꺼낸 행태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감정은 곁가지다. 본질은 역사적 진실이다. 과연 YS가 3당 합당을 하면서 돈을 받았는지, 또 자신의 집권 시절 도청을 알았는지, 또 지시했는지가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YS는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측근인 김기수 전 청와대 수행실장이 “박 전 의원은 틈만 나면 YS를 음해한 인물”이라며 노코멘트한 것이 전부다. 신한국당이 1,197억원의 안기부 예산을 15대 총선(1996년)에 전용했다는 ‘안풍사건’의 재판에서 핵심 측근인 강삼재 전 사무총장이 “YS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했을 때도 YS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의혹들은 다른 의혹들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나라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다. 진실에 대한 침묵은 YS의 좌우명인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도리나 정도에는 거칠 것이 없다)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도 재임 중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역사 바로세우기’를 하지 않았던가. 진실을 밝히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권혁범 정치부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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