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8년 8월 해상무역을 주도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영국 함대에게 궤멸 당한다. 이후 영국은 바다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첫 발을 내디뎠다.
21세기는 해양의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역사를 되돌아보면 바다가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한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대회전은 바다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며 바다는 역사의 승부처였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세계 열강들은 제국주의 야욕을 실현하는 통로로 바다를 이용했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를 중심이 아닌 변방으로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국토의 3면이 바다에 접해 있으면서도 이를 발판 삼아 국력을 떨치기는 커녕 비극과 굴욕의 시대를 보내야만 했다.
우리 정부는 1996년부터 5월31일을 ‘바다의 날’로 정하고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바다에 대한 우리의 시야는 여전히 좁다.
민속학자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주강현씨의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는 육지 중심의 기존 역사관을 뒤집고 바다를 돋보기 삼아 역사를 새롭게 되돌아보기를 권한다.
주씨는 이런 시도가 ‘생각의 반란’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바다를 통해 과거를 되씹고 현재와 미래를 본다면 우리 역사와 세계사를 바라보는 지평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올해 또다시 불거진 일본과의 독도영유권 분쟁도 결국은 우리가 변방으로 치부해온 바다를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씨는 조선이 세계사의 조류에서 밀려 일본 제국주의와 서구 열강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결국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바다를 외면한 결과라고 말한다. 아직까지 독도영유권 분쟁에 시달리고 세계지도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결국 바다를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때 일본의 울릉도 부당 점거에 항의하고 우리의 지배권을 확인했던 민간 외교가 안용복이 귀양을 가고, 독도수비대가 국가로부터 마땅한 처우를 받지 못한 것 등을 그 예로 든다.
반면 일본은 15세기부터 집요하고 주도 면밀하게 해양정책을 펴왔다. 독도에 한해서만도 일관된 계산법으로 논리를 개발해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대응책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집요한 침략 야욕과 그 부당함을 문헌과 역사적 사실을 들이대며 통박한다. 21세기 들어서도 우리의 바다와 육지를 침탈하려는 일본을 ‘신(新)왜구’라 지칭하고, 그 역사적 뿌리도 파헤친다. 메이지 유신과 정한론의 사상적 고향인 일본 가고시마와 시모노세키, 쓰시마 등을 직접 방문해 얻은 자료들과 현지 조사를 통해 제국과 식민의 명암을 가른 역사의 장면들을 복원해낸다.
바다를 키워드 삼아 자칫 딱딱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역사를 쉽게 풀어 쓰고 새롭게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독자들이 바다라는 현미경을 통해 일본의 근현대사를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독도 영유권 분쟁과 동해 표기를 둘러싼 적합한 논리를 일반인들이 어렵지 않게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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