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서울을 떠나 시골에 새로 터를 잡았다. 농가를 구해 이사를 하며 마당 가에 호박 몇 포기 심었다. 그런데 거름이 부족해서인지 호박이 순만 뻗지 통 열매를 맺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놀러와 ‘호박 열매 달리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손에 작대기를 들고 마음을 경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땅을 두드리면서 “이놈의 호박아. 반찬거리가 없다. 어서 열려라” 하고 겁을 주면 이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어머니에게 했더니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위에 할머니는 호박뿐 아니라 지난해 제대로 열매를 맺지 않은 과일나무들에게도 이른 봄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상년엔 해거리를 하느라 좀 쉬기도 했으니 올해는 땅값도 하고 거름값도 하고 쳐다보는 사람 눈값도 하셔야지.” 또 지난해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들에겐 “올해 자네는 좀 쉬시게. 푹 쉬고 내년에 많이 맺으시게” 하셨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 할머니가 막내 동생을 업고 마당가의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잡고 무어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던 모습이 안개 속의 풍경처럼 아주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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