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시마-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 / 나스 마사모토 글. 니시무라 시게오 그림. 사계절.
2차대전 종전 50주년이던 1995년, 미국 텔레비전의 특집 방송을 보았다.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전쟁에 대한 독일의 책임과 만행을 파헤치는 강도에 비해 일본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너무 미미했다.
게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 내 국일본인들을 캠프에 수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너무 다른 시각에 벌어진 입을 한참동안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 덕분에 일본인들이 전쟁의 피해자연 하는 것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제목과 표지만 보았을 때, “아! 이 사람들이 또 자기들의 입장만 강변하려나보다. 그들의 맨 얼굴을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지.”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묘하다. 얼른 보아서는 핵무기와 2차대전에 대한 지식정보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원자폭탄과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그리고 다각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원자폭탄 제조의 과학 원리와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개발을 가능하게 한 과학자들, 애초에 독일을 목표로 했던 것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변경된 이유, 전후의 핵개발 상황과 군비 경쟁과 같은 정치 외교적 맥락까지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또 원폭 피해는 투하 직후 히로시마로부터 이후 계속 관찰한 피폭자들의 후유증은 물론, 일반적인 방사능 노출로 인한 피해에 이르기까지 다룬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의 해석은 철저히 일본 중심이다. 미국이 소련과의 힘겨루기와 핵 개발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폭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원폭의 위력을 최대로 보여주기 위해 히로시마를 비롯한 몇몇 도시에 연합군이 폭격을 덜 했다는 대목이 그 예다.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뿐이다.
책은 그림과 배경 지식의 설명이 분리되어 있는데 그림 부분은 전쟁과 원폭의 처절함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어른들은 생업에 종사하고 아이들은 강에서 헤엄치며 나무다리 위로 짐수레와 자전거가 오가는 평화로웠던 히로시마와 전쟁이 나자 병참기지가 된 모습, 등화관제로 컴컴한 히로시마의 밤, 더해가는 전쟁 기운에도 불구하고 걱정 않는 사람들, 그리고 주황색 섬광과 굉음, 납과 같은 빛의 맛, 무참하게 파괴된 도시, 강물까지 훑고 지나간 불길, 드리우면 고통이 너무 심해 팔을 앞으로 내민 채 도시를 탈출하는 사람들, 시체 더미를 처리하는 임시 화장터.
방대한 정보를 글뿐만 아니라 지도, 표, 그림에 효과적으로 곁들여 가독성을 높인 이 책은 우리에게 도전정신을 일깨운다. 그들이 가해자임을 세계에 알리는 책은 결국 피해자인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므로. 더구나 이 책은 영어로 번역되었으니 말이다.
책 칼럼니스트 강은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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