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해산이라고 불러달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는 10일 자민당 간부와의 회의 도중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이렇게 선언했다. 그는 8일 국회에서 우정개혁 법안이 부결된 뒤 자신의 처지를 종교재판을 받은 과학자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처지에 비유했다.
중의원을 해산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갈릴레오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을 때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다. 국회가 법안을 부결했지만, 국민에게 다시 한번 옳은 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말이지만, 국민의 입에 회자되는 히트작이 됐다.
“그 사람(고이즈미 총리)은 천동설(天動說)이야.” 반대세력의 리더인 자민당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전 정조회장은 11일 이렇게 맞받아졌다. 고이즈미 총리의 자기중심적인 행태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한 천동설에 절묘하게 비유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단행한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유례가 드문 말의 성찬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을 직접상대하기 보다는 막후 협상에 익숙한 일본 정치인들이 서로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홍보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내용은 죽고 죽이는 진검승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살벌하다.
앞서 고이즈미 총리는 참의원 표결 전 자신을 마지막으로 설득하러 온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수상에게 “난 살해당해도 좋다”는 연극조의 대사를 던졌다. 모리 전 수상은 “당신은 정말 헨진(變人ㆍ괴짜)이군”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반란표 의원들을 공천에서 배제한 뒤 당권파 간부는 “개혁에는 피가 필요한 법”이라고 전의를 다지기도 했다.
반대파의 비유도 이에 못지 않다. 한 의원은 “안세이 다이고쿠(安政大獄)처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모두 말살하려는 음습한 작태”라고 혀를 찼다. ‘안세이 다이고쿠’란 1858년 도쿠가와(德川) 막부 때 비판적 인사를 탄압한 정변으로, 민심이 악화돼 막부가 몰락한 계기가 됐다. 다른 당 원로는 은퇴를 선언하고 고이즈미 총리와 면담하면서 “대통령께 인사 왔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나는 승부사니까요. 그렇죠?” 자민당내 여성 얼짱 관료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성 장관은 반대파의 선봉장이던 고바야시 고키(小林興起) 전 재무성 장관을 쓰러뜨리라는 명령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
표적공천을 당한 고바야시 전 장관은 “순교자들을 맹수에게 내던지는 로마 황제와 같다”라고 고이즈미 총리를 비난했다. 가메이 전 회장은 두 사람의 대결을 “자객을 보내 상대를 죽이고 자기도 죽으라는 식의 인의(仁義) 없는 싸움”이라고 비유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만일 일본에 핵폭탄이 있다면 발사 단추를 누를 사람이다.” 자민당 반대파 의원이었던 야마구치 준이치(山口俊一)는 한술 더 떴다.
“오늘은 일본 쇄신의 출발점이다. 권력투쟁에 날이 새는 자민당에게 내일은 없다.”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는 상기된 표정으로 열변을 토했다.
“우리는 괴물 고이즈미와 싸우는 것이다.” (마에하라 세이지ㆍ前原誠司ㆍ민주당 전의원) 해독하기 힘든 고이즈미류 정치에 대한 민주당의 초초감은 이 같은 말로 표현됐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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