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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광복절… 쓰라린 기억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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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광복절… 쓰라린 기억을 넘어

입력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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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으로서 광복절이 어떤 날인지 잘 안다. 네덜란드는 여러 차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스페인, 프랑스로부터도 독립을 하고 마지막으로 1945년 5월 독일군의 지배로부터 공식적으로 자유로워졌다.

매년 5월 5일을 기념하는데 5월 4일은 독일군 통치 때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날이다. 그 때 네덜란드인 1,000여 만 명 중 약 160만 명이 죽었다. 네덜란드는 다시 살아 남기 위해 힘든 기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맺은 협약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전쟁캠프에서 일본군 죄수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잊혀졌다. 일본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을 위안부처럼 고통 받게 했고, 민간인과 그 자녀들까지 강제수용소에 몰아넣었다. 음식은 감시병 기분에 따라 달라졌고 일부는 배고 고파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 아무 이유없이 잔인하게 고문받아 죽기도 했다.

수용소에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도 대부분 전쟁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어떤 이들은 정신이상으로 입원해야 했다. 수용소에 있던 아이들은 교과서가 없어 교육을 받지 못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지금도 가슴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독립을 하고 나니 14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가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고등학교도 가지 못했으나 똑똑해서 기술자가 되었고, 현재는 전쟁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인도네시아로 가는 여행을 주관하기도 한다.

그는 당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은 이야기를 해 줬다. 나는 아내가 한국인이라 그의 이야기에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네덜란드는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 관련 보상금을 받은 유일한 나라라고 했다.

그는 또 당시 포로들이 한국인을 일본인보다 싫어했다고 했다. 일본인 밑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더 잔인하게 고문을 했기 때문이다. 독일군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군 한 명이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동네 사람 모두를 학살하기도 했다. 아이들한테도 그랬다.

광복절. 많은 이들이 독립을 쟁취한 기쁜 날이지만 슬픈 기억 때문에 아직도 자신의 마음 속에 갇혀 사는 이가 많은 것 같다. 전쟁은 끔찍하고 처참하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결국 독일인들을 용서했다. 잊어버려야 하고, 또 살아가야만 한다.

헨니 사브나이에 네덜란드인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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