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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해맑은 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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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해맑은 참글'

입력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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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없이 정직한 글, 삶에서 우러나온 글. 그런 글은 힘이 세다. 읽는 사람 마음으로 곧장 쳐들어와 반듯하게 자리잡는다.

27년 전인 1978년 청년사가 펴낸 농촌 아이들의 글 모음집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는 바로 그런 글로 충격을 주었다. 아이들 세계라면 그저 예쁘고 곱게만 그리는 게 아동문학인 줄 여기던 통념은 이 책으로 깨졌다.

가난에 울고 일 하는 게 힘들어 부아를 내기도 하면서 그래도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씩씩하게 자라는 농촌 아이들 모습이 그 안에 펄떡펄떡 살아있다. 많은 이들이 이 책에서 참된 삶을 보았고 거기서 힘을 얻었다.

어린이들에게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운동을 펼쳤던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 선생이 엮은 이 책은 참된 글의 본보기로, 글쓰기 교육을 하는 모든 이들의 고전이 되었다.

1950~70년대 그가 가르쳤던 초등학교 아이들의 산문과 일기 모음이다. 그러나 진작 절판되어 구할 수 없던 것이 새로 4권으로 묶여 나왔다. 글이 씌어진 날짜와 글 내용을 봐서 계절에 따라 봄-‘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여름-‘방학이 몇 밤 남았나’, 가을-‘꿀밤 줍기’ , 겨울-‘내가 어서 커야지’의 네 권으로 나누었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특별한 사건을 말하거나 별난 글재주를 부려서가 아니라 서투를 망정 오로지 정직하게 자기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가슴 뭉클한 글도 있고, 간질간질 웃음이 터지려는 글도 있고, 시처럼 아름다운 같은 글도 있다.

고구마 한 개 집어먹었다고 어머니한테 맞고, 서러워서 울었더니 운다고 또 맞은 아이는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생각한다. <성국이네 어머니가 얼라(아기) 봐라고 해서 얼라를 업고 놀다가 내 속으로 얼라 조 부고(줘 버리고) 책보에 쌀하고 벌쌀(보리쌀)하고 옷하고 싸 가지고 도망가 부까(도망가 버릴까) 하였습니다.> (가을-‘꿀밤 줍기’에서)

<돌미(돌멩이)가 산에서 추워서 울고 있습니다. 소나무도 벌벌 떨고 소나무는 바람이 부니까 싫다고 떠드는 소리가 왕왕 들립니다. 돌미하고 소나무하고 친한 친구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며 떠는 것 같습니다.> (겨울-‘내가 어서 커야지’에서)

가난에 치인 아이의 글은 가시처럼 가슴을 찌른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죽 상이 방 안에 들어왔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기렁기렁하였다. 하는 수 없이 한 그릇을 먹고 학교에 올라고 나섰다. 나는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났는가? 이런데 공부 열심히 하면 무엇하나 생각했다.> (봄-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에서)

하나하나 맛있게 읽으면서도 요즘 아이들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막을 수 없다. 학교로 학원으로 하도 바빠서 뛰어 놀 시간도 없고, 흙이며 풀과 벌레를 몸으로 느끼기도 어렵고, 땀 흘려 일하는 괴로움과 보람을 알기에는 너무 허약한 아이들에게 이 글들이 영양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틀에 박힌 모범답안 같은 글쓰기가 쫘악쫙 퍼지고 있는 요즘, 이 네 권의 책에서 만나는 건강한 글쓰기는 무더위를 씻어주는 시원한 소낙비 같다.

머리말에서 이오덕 선생은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간곡한 당부를 하고 있다. <글짓기를 하려고 하는 어린이가 어떤 남의 작품을 읽고 배워야 것은 글쓴이의 정직성과 진실성입니다. 결코 글을 흉내내서는 안 됩니다. (중략) 서툴게 쓴 짤막한 한 줄의 글이 상을 탄 백 글보다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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