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국회가 기초자치단체 의회 의원도 정당 공천을 받을 수 있게 법을 개정함으로써 그 나마 순수한 주민자치의 숨을 쉴 수 있었던 풀뿌리 지방자치의 싹 마저 잘라 버렸다. 원래 열린우리당의 당론은 개혁정당을 표방하며 기초자치단체 장까지도 정당공천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광역자치단체까지는 정당에 의하여 조직적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하더라도 기초자치단체는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진정한 생활자치로서 중앙의 정치와는 무관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개혁적 합리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중대한 개혁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국회의원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정당공천을 통하여 지방의회 의원을 완전히 장악하고 국회의원의 선거운동원화 하려는 것이다. 지금 당장 현직에 있는 기초의원들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대비하여 정당에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시정에 대한 고민보다도 어느 정당에 들어가야 하는 지가 화두고 고민이라는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당에 줄서기보다 친환경적 주민복지와 인권, 여성의 참여보장, 생동감 있는 지역활동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줘야 할 때에 지방자치가 왜곡되고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공천을 통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한다는 논리를 수긍할 지역주민은 없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중앙정치의 폐해 때문에 기초자치단체 장이나 의원들의 거의 100%가 무소속인 것이다.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 공천 헌금 문제는 부패비리를 낳는 근본원인이 될 것이다. 기초선거 후보는 공천헌금에 그치지 않고 당선된 후 국회의원ㆍ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정당에 정치자금을 바쳐야 할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초단체장이 일을 잘하여 주민들의 인기가 높으면 지역구 국회의원은 장차 자기와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하여 오히려 공천에서 배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당공천제로 인하여 지방선거는 정당 간에 대리전 양상을 띄며 과열되어 내년에는 대선ㆍ총선 전초전으로 그 혼탁양상이 극에 달할 것이다.
구미(歐美)선진국은 당비를 내는 수준 높은 당원들이 지방당 대회에서 비밀투표로 지자체장과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며 중앙당 간부와 지역구 국회의원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의 경우는 다르다. 당 대의원들이 기초지자체장 후보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중앙당 실세와 지역구 국회의원이 낙점(落點)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초자치단체는 정당과 지역구 국회의원에 예속되고,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 가 아니라 ‘정당을 위한 정당자치’ 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참다운 지방분권을 실현하려는 목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여당시절 정당공천제를 반대했던 한나라당이 야당이 된 지금에는 정당공천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 의원들의 기득권 보장과 지방자치가 어떻게 되든 지역주의에 기반하여 정당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정략적 발상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여야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야합으로 지방자치를 말살하려 한다면 지난 탄핵 정국 후 국회의원 선거 때와 같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시 바삐 다시 지방선거법을 개정하여 기초의회 의원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까지도 정당 공천을 배제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는 진정한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활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방자치의 재정자립도가 취약하여 중앙정부에의 의존도가 높은데 거기에 정당을 통한 통제까지 겹친다면 지방자치의 창의적 운영은 크게 제약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기초자치단체의 운영은 주민자치에 완전히 맡기고, 그 지역의 국민대표로써 국가적 과제에 몰두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ㆍ한국헌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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