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유리창 넘어 내려다 보았던 조국의 산과 강이었습니다. 이제 직접 코를 대고 흙냄새 물내음을 맡고 싶습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재미본부 상임의장 양은식(71) 박사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14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ㆍ15 민족대축전’ 행사를 통해 40년 만에 고국 땅을 밟게 되는 양 박사는 13일 오후 대한항공 편으로 미주대표단을 이끌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한다.
양 박사는 북한 방문 경력과 통일 운동 이력 탓에 번번히 입국이 좌절된 데다 이적단체인 범민련 최고위 간부라는 점에서 이번에 방문하는 해외인사 150명 중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현재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하는 그는 최근 LA 총영사관에서 5년 짜리 비자를 받고 비로소 고국 방문의 꿈을 이뤘다.
양 박사는 입국을 허가한 정부에 “고맙다는 생각까지 든다”면서도 자신을 친북인사로 규정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북한을 자주 방문했고 남한에서는 입국을 막아 들어갈 수 없었으니 그런 의견이 나올 법도 하지만 이는 매우 냉전적이고 정치적인 시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통일 운동하는 사람이 남과 북을 나누면 어떡하느냐”며 “자신은 친북인사이자 친남인사”라고 강조했다. 입국 금지가 해제된 배경과 관련, 그는 “국민 정서가 변화한 것을 반영하지 않았겠냐”며 “과거 비공식적인 통로로 입국 금지를 풀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으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풀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양 박사는 17일까지 공식 일정을 마친 뒤 4, 5일 가량 지인 집에 더 머물 계획이다. 양 박사는 “옛날에 살았던 서울 상도동과 퇴계로의 하숙집, 다니던 용산의 교회에도 가보고 싶다”며 40년의 세월 속에 희미해진 옛 추억을 더듬었다.
1934년 평양에서 태어나 살다 50년 한국전쟁 와중에 혼자 월남했던 그는 6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대 동아시아 분야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76년 북한에 모친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오스트리아를 거쳐 평양에 다녀온 뒤로 입국 금지자로 분류됐고 이후 세 차례 고국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는 80년대 동료 학자 6명과 북한을 방문한 뒤 방문기 형식으로 ‘분단을 뛰어넘어’란 책을 출판했는데 당시 한국 대학가에서 비밀리에 전파되기도 했다. 89년 평양에서 임수경씨를 만났다는 양 박사는 당시 행사장 옆 자리에 앉았던 임씨가 이 책을 언급하면서 “남한 대학생들이 아주 잘 읽고 있다”고 말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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