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4당 공조를 추진력으로 달려가던 X파일 진상규명 특검법이 한나라당 내부의 문제제기로 제동이 걸리고 있다. 11일 한나라당에선 “위헌 요소에 대한 철저한 검토”, “법안을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분출됐다.
야4당이 합의한 특검법의 핵심은 “테이프 내용에 담겼을 것으로 보이는 정경언(政經言) 유착의 실태를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수사해 확인되면 전면 공개하자”는 것이다. 공조의 거멀못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 테이프 공개 부분에 대해 “위헌적”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기춘 여의도 연구소장은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을 어겨 불법도청을 수사자료로 쓰게 되면 도청을 독려하고 불법도청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특검법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박근혜 대표는 이에 호응하듯 “특검법의 위헌성 논란에 대해 대표로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법사위에서 위헌 요소를 거르고 문제 조항을 순화하는 차원에서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미 소속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법안에 대해 지도부가 재검토를 요구한 형국이다.
야4당 공조를 이끌어냈던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이에 대해 “위헌 시비가 있으니 법사위에서 차분히 걸러보자는 의미”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당 저변엔 특검법의 위헌소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남경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특검법에는) 법 원칙과 공익에 대한 고민보다 정치적 계산이 먼저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법사위원인 주호영 의원도 “공소시효가 지난 것을 수사하고, 위법사실이 확인됐다고 전면 공개하는 것은 명백히 위헌”이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왜 뒤늦게 이 같은 논란이 빚어지는 것일까. 당 협상라인이 민노당 등 야3당을 끌어 들이는 데만 골몰한 결과다. 다시 말해 민노당 등의 주장을 수용하다가 당초 테이프 공개문제에 대해 당이 갖고 있던 원칙을 하나 둘 허물어뜨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법을 어기면서 공개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현행법에서도 공개할 수 있다”로 입장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날 지적된 위헌요소를 없애고 야4당 공조의 틀도 유지할 묘수가 있을까. 이 질문에 한나라당의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현재로선 “없다”가 정답에 가깝다.
자연 야3당, 특히 민노당과의 공조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당장 민노당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발의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위헌 운운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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