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랄 때는 집에 일하는 사람이 거의 있었잖니. 엄마가 생전 일하는 걸 못 본 것 같아. 맛있는 걸 만들어준 적도 없고.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3일에 한번씩 미장원가서 머리하고 한복 곱게 입고 놀러 다니지 집에서 애들 기다리는 법이 없어. 엄마한테 집에 있으라고 하면 내가 너희만 기다리느냐고 도리어 소리를 치는데.”
“엄마가 뭐든지 큰아들 위주로 나는 아주 싹 무시했는데 지금 와서는 아들이 못 모신다니까 나랑 살잖아.”
“고모들이 엄마에게 참견하고 박대해서 주눅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무심했던 것 같아.”
“우리 엄마도 살갑게 대한 기억이 없어. 매일 어디 아프다 어디 아프다 하고.” ●'헌신적 어머니'라는 환상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윤선희 교수가 모성성에 대한 연구를 위해 심층 인터뷰한 50대 주부들의 이야기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역시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현재 70, 80대인 어머니에게 그다지 살갑지 않다.
40대 후반인 내 주변에도 이런 식으로 어머니를 말하는 또래들이 가끔 있다. 그들에게 어머니란 자녀에게 희생해야 하는 존재인데, 실제의 어머니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상처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이런 심층인터뷰를 통해 남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와 진배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성들은 “우리 엄마만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를 들으니 다행”이라며 웃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렇게 희생하는 어머니는 별로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딸들에게 희생적인 어머니는 더더욱 드물다. 그게 현실이다. 그걸 알아야 비로서 현재 70, 80대인 중산층 출신 어머니들을 이해하는 게 시작이 된다.
우선은 어머니들이 겉으로는 식모를 부리며 여유있게 산 듯 싶지만 실은 가부장제 안에서 시집의 대소사는 물론 먼 친인척의 어려움까지 두루 살펴야 하는데다가 남편으로부터는 대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침울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보인다.
그러면 서서히 그 어머니가 매일매일 표 안나는 궂은 일들을 수행해온 덕분에 그들이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눈뜨게 된다.
아니 설사 그런 역할조차 못 했다 하더라도 피차 성인으로서 상대방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헌신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머니가 표가 나게 헌신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스스로만 불행한 삶을 산 듯 연로한 어머니를 괴롭히기도 한다.
이것은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이란 서로 사랑하고 돕는 이상적 관계라고만 생각을 한다. 그러나 헌신적인 어머니가 드물듯이 세상에는 이상적인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재산을 둘러싼 세 자녀와의 갈등 속에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하는 60억대 자산가 할머니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80년에 이탈리아로 유학갔다가 97년에 귀국한 철학자 김용석씨는 그 사이 한국사회에 공중도덕이 없어진 것이 가장 눈에 띈다고 말한다.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 정책으로 강제되던 공중도덕이 억압정치가 사라지면 자율적인 도덕률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그런 공동체적인 삶의 태도는 갖춰지지 않은 것이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지적을 했다.
●'60억 할머니' 더 안 생기게
가족관계의 문제도 비슷하다. 급격한 산업화로 무조건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규범적 가족관계의 틀은 해체되어 가는 반면, 오래 의지하고 살면서 사랑으로 연결되는 가족관계라는 새로운 틀은 자리를 잡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요구하는 것은 많고 사랑은 적은 기이한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생채기 낸다.
자녀들이 정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돈으로만 연결된 관계라면 왜 그 할머니는 그 관계를 끊고 다른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을까.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지역에서 사회봉사를 하면서 가족을 넘어서는 더 큰 가족을 만들지 못했을까. 그것이 안타깝다.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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