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도청파문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최근 언론에 감청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데 이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감청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10일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주 수사상 감청 허용대상을 테러와 마피아 관련 범죄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또 감청내용을 공개할 경우 징역 5~10년의 중형에 처하도록 했다.
집권 여당이 불법 감청(도청)된 내용을 공개하자는 특별법을 발의한 우리와는 방향이 정반대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작심하고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문제의 감청 녹취록 공개 파문 때문이다.
이 녹취록에는 중앙은행장인 안토리오 파지오가 한 금융기관 인수과정에서 친구측을 불법 지원한 사실이 담겨 있다.
또 두 사업가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 유력지 코리에레델라 세라를 인수하자고 말한 대목도 나온다. 이탈리아 언론재벌 출신인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불똥이 자신에게 튀자 의혹을 부인하는 선에 머물지 않고 아예 수사기관의 감청대상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 역공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 법안에 대해선 중도우파 연립정부에서도 감청대상을 지나치게 좁혀 놓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상을 뛰어 넘는 도청 빈도 및 행태, 사적 대화의 무분별한 공개에 대한 반성도 일고 있어 법안 추진의 우군이 되고 있다.
1996년 한국 안기부에 휴대폰 도청장비를 판매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에서 2000년 이후 허가된 감청만 18만3,000건을 넘는다.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베를루스코니 총리로선 두 차례 사법기관과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하게 된다. 그는 판사매수 사건에 연루돼 현직 총리로서 처음 법정에 섰으나, 지난해 12월 무죄를 선고받아 첫 승리를 거뒀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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