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 버스가 서면, 두 사람이 내린다. 보리울 성당에 첫 부임하는 김 신부와, 방학을 맞아 출가한 아버지를 찾아온 초등학생 형우다. 그들은 정갈해 보이는 수녀와, 털털한 우남 스님의 마중을 각각 받는다. 2003년도 영화 ‘보리울의 여름’의 첫 장면이다. 두 사람의 등장으로 보리울 마을에 축구 열기가 불붙는다.
고아로 구성된 성당팀과 악동들이 모인 마을팀은 마침내 단일팀을 이루어, 막강한 읍내팀에 도전한다. 축구이론에 해박한 우남 스님과 젊은 김 신부도 가세하여 보리울의 축구 열기는 여름을 달군다.
▦ 그리운 농촌의 낭만과 추억 같은 삽화를 떠올려주는 영화다. 천진한 열정의 성당 신부와, 때로는 무섭게 수행하는 아빠 스님의 캐릭터가 영화의 가벼움을 던다. 이번에는 족구다. 지난 6일 강원 월정사가 무대다.
산중 스님과 읍내 신부가 대결을 벌였다. 먹물 옷을 입은 스님팀이 등장하자 불자들이 목청을 높였고, 사제복에 반바지 차림의 신부팀이 나오자 수녀들이 소녀처럼 환호했다. 스님팀은 소림사 무사처럼 현란한 발놀림을 펼쳤으나, 신부팀이 2대1로 승리했다. 양팀은 “이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추억은 없을 것”이라며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 한국 불교와 가톨릭 간의 우의는 돈독해 보인다. 지난 석가탄신일 서울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에는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노쇠한 몸으로 참석했다. 법정 스님이 합장하며 맞았다.
길상사가 미혼모 자녀의 국내입양을 주선하는 천주교 성가정입양원을 돕는 음악회였다. 김 추기경은 “진심으로 감사한다. 하느님의 축복이, 부처님의 은덕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길 빈다”고 인사해 박수를 받았다.
▦ 옛날 사진공모전의 단골 소재가 있었다. 가사장삼을 입은 승려가 단정한 차림의 수녀와 냇물 징검다리 가운데서 우연히 만난다. 스쳐 지나기 전 그들이 예를 갖춰 인사하는 장면이다. 그 사진은 남녀 성직자 간의 극적인 만남과 대비를 통해, 종교 간의 이해ㆍ관용ㆍ공존은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성직자 족구 기사가 숲과 강을 건너오는 바람처럼 청량한 것 역시 같은 까닭일 것이다. 한 마디 첨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국제테러와의 관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우리 종교가 저 외로운 이슬람에도 먼저 손을 내밀 때가 되었다는 점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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