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자금 수사 당시 ‘내사중지’ 형태로 어정쩡하게 마무리됐던 삼성그룹의 2002년 대선 불법정치자금 제공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됐다.
대검 중수부(박영수 부장)는 11일 삼성이 2000~2002년 800억원 대의 무기명 채권을 사들이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으나 대선자금 수사 초기 외국으로 도피해 조사하지 못했던 전 삼성 직원 최모씨가 5월20일 귀국 후 곧바로 잠적해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5월21일 최씨를 출국금지 조치하고 경찰에도 소재파악을 요청했다.
검찰은 지난해 5월 대선자금 수사 결과 발표에서 삼성 채권 800억원 중 302억원 어치가 한나라당으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나머지 채권의 행방은 중요 참고인들이 해외로 달아나 내사 중지했다고 밝혔다.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은 “(나머지 채권 부분은) 매입에 관련된 최씨와 김모씨를 조사해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두 사람이 해외에 있어 조사가 안 됐다”며 “두 사람이 귀국하면 수사를 재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최씨와 김씨는 삼성그룹에 차장급으로 있다 퇴직한 뒤 2000~2002년 사이 박모(올 7월말 사망) 당시 구조조정본부 상무의 지시를 받아 수백억 원 대의 채권을 삼성을 대신해 매입해줬다.
삼성측은 검찰 수사에서 “이건희 회장 개인 돈이다” “임원 격려금으로 썼다”며 구체적인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으나 검찰은 채권 매입자들을 조사하지 못해 이 같은 주장을 깨지 못했다.
최씨는 검찰이 금융예탁원 등을 압수수색하며 삼성 채권 수사를 본격화하기 이틀 전인 지난해 1월 14일 출국했고, 귀국시점도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이 특별 사면된 뒤 일주일 만이어서 최씨와 삼성간의 교감설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귀국한 김씨를 최근 소환 조사했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찾지 못해 최씨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최씨의 신병을 확보해 채권 번호 등을 파악한다 해도 당장 사용처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정된 채권이 금융기관에 일단 신고돼야 그때부터 사용처 역추적이 가능한데다 이 역시 삼성측이 모르쇠로 잡아뗄 경우 혐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500억원의 미확인 삼성 채권에 대한 수사 재개가 안기부 X파일에서 드러난 삼성의 대선자금 제공의혹 규명의 또 다른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어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검찰은 “(채권 수사와 관련해) 이학수 부회장을 또 부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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