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10일 돌연 병원에 입원하자 열린우리당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악재 중 악재가 터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불법도청 문제로 진노한 김 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특사 파견을 검토하는 등 안간힘을 써 왔는데 그의 입원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즉각 대책 모임을 가진 데 이어 동교동계인 배기선 총장을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보내 병 문안을 하도록 했다. 문희상 의장은 쾌유를 비는 난을 보냈다. 배 총장은 병원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죄송하다’ ‘쾌유를 빌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병원 면회가 허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11일부터 줄줄이 병 문안을 갈 계획이다.
전병헌 대변인은 논평에서 “본말이 전도된 답답한 현실도 김 전 대통령의 건강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도청의 주범은 어디까지나 한나라당임을 부각하며 국민의 정부시절 도청문제를 희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예민한 우리당의 반응은 대통령 지시로 국민의 정부 도청사실이 공개돼 호남민심이 가뜩이나 흉흉해진 상황에서 김 전대통령의 입원이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만에 하나 고령의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게 우리당의 관측이다. 한 당직자는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에 자신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일이 생겼으니 충격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며 “병세가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라는 말로 이런 기류를 대변했다. 그러나 당 일각엔 “정부 도청 파문에 대한 불만표시를 위한 ‘병상 정치’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DJ의 적자를 자처하는 민주당은 당장 “DJ의 입원은 현 정권의 도청사실 공개 때문”이라고 규정하며 여권을 압박했다. 가장 먼저 병원에 달려온 이낙연 원내대표는 “(병원 입원이유는) 정신적인 충격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며 “아프신 게 시기적으로 그때이니 이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만은 어렵지 않은가”라고 여당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국민의 정부 도청 공개 이후)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상심이 커서 식사도 못하던 상태였다”고 우회적으로 청와대와 여당을 겨냥했다. 그러나 DJ의 한 측근은 “김 전 대통령은 이미 현실정치를 떠난 분인데 병상 정치 운운은 가당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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