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불법도청 고백 이후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김승규 원장조차 잠을 못 이룰 정도라 하고 “설립 이후 최대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정치권만 해도 “아예 없애버리자”는 극단적 주장이 나오는 등 하룻밤 만에 만들어낸 졸속 개편안이 쏟아지고 있다.
안에서는 검찰의 압수수색에다 현직 직원의 처벌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설상가상으로 도청 고백을 둘러싼 음모론이 커지는 만큼 “미주알고주알 모조리 공개할 게 뭐냐”는 내부 반발도 심상찮다.
국정원을 향한 바깥의 때리기는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해체하자는 강경론부터 “최소한 국내 파트는 확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도 폐지까지는 아니지만 “국내 파트는 최소부문만 살리고 해외 파트를 강화하자”는 등 개편 목소리만큼은 크다. 이런 주장은 여야가 국정원 개편을 위한 당내 연구기구를 각각 출범시키면 한결 높아질 것이다.
DJ정부 도청 고백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강한 불만은 이미 여당과 정보기관간의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문희상 의장은 최근 “사실 관계를 좀 더 확인해보고 발표했어야 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정보위 소속 한 여당의원도 “DJ정부가 불법도청을 했다면 최소한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밝혀야 할 것 아니냐”며 국정원의 발표가 성급했다고 질책했다. 동교동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여권이 그 책임을 김승규 원장에 떠미는 식이다.
향후 검찰수사의 파장은 국정원 조직 내부의 직접적인 동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불법도청 수사의 강도에 따라 현직 직원이 사법처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법무장관을 지낸 김 원장 스스로 “부하 직원들이 처벌 받으면 나 역시 원장직을 수행하기 어렵지 않느냐”고 고충을 토로할 정도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이날 “불법도청이 터진 뒤 아들이 ‘아버지도 도청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숨이 팍 막히더라“면서 “전 직원이 마치 범죄자인양 매도당하는 게 너무나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직원은 “일손이 안 잡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며 “불법을 지시한 인사들은 모두 떠나가고 지시를 따른 힘없는 직원들만 처벌받게 됐다”고 허탈해 했다.
이 같은 하소연 속에 도청고백 자체에 대한 반발기류도 만만찮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합법 감청 업무에 종사했던 현직 직원들 위주로 ‘그럼 우리는 뭐냐’는 불만이 적지않다”며 “이번 일이 대규모 구조조정 및 해직사태로 이어질 경우 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지난 8일 부랴부랴 특별훈시를 통해 “도청고백은 국민의 이해와 사랑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달래기에 나섰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