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회장 천기흥)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약관 시정권고를 받아들여 새로 마련한 변호사 사건위임계약서가 문구만 약간 수정한 채 소비자에게 불리한 주요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공정위가 지적한 대표적 불공정 조항은 ‘착수금 불(不) 반환’과 ‘승소(勝訴) 간주’ 조항. 기존 변호사 사건위임계약서는 의뢰인이 중간에 소송을 취하하거나 임의로 변호사 위임을 해지한 경우, 이미 지급한 착수금을 돌려 받을 수 없을 뿐더러 이를 승소로 간주해 변호사에게 성공보수까지 지급하도록 돼 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의뢰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이라며 수정ㆍ삭제토록 권고했다.
그런데 변협이 지난달 25일 각 지방변호사회에 배포한 새 사건위임계약서는 문구만 약간 달라졌을 뿐 지적된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착수금 불 반환 조항의 경우 변호사가 의뢰받은 업무를 시작한 뒤에는 종전대로 의뢰인이 착수금 반환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다만 필요하면 협의하여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변호사가 의뢰받은 업무를 시작하기 전이라도 의뢰인이 임의로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는 변호사가 입게 되는 손해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만 반환하도록 했다.
승소 간주 조항도 ‘변호사가 상당한 노력을 투입한 후 의뢰인이 소송을 취하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성과보수를 지급한다’고 명시해 기존 조항에 ‘상당한 노력을 투입한 후’라는 문구만 추가했다.
하지만 ‘필요하면 조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과 ‘변호사가 입게 되는 손해’‘상당한 노력’ 등의 문구는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사실상 종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불공정 소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시정권고를 벗어나기 급급해 문구 수정에만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 약관제도과 관계자는 “향후 같은 조항에 대해 신고가 들어오거나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면 다시 불공정성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김지성 기자 j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