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의 가르침
생태계에는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동맹이 있다. 새로운 종(種)이나 같은 종이라도 다른 속(屬)에 속하는 생물이 출현하면 기존의 종과 속에 속하는 생물이 새로 출현한 생물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숲 속에 외래 종자의 나무라도 한 그루 심어지면 주위에 있던 나무나 풀들이 햇빛을 가리고 양분도 빼앗는가 하면 그 나무에게 해로운 화학물질도 배출하면서 성장과 번식을 방해해 결국 도태시킨다. 몇 년 전 식물생태학자인 외삼촌과 유럽여행을 같이하며 들은 생태학이론이다.
숲 속을 거닐 때면 평화로워 보이는 숲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식물의 치열한 생존경쟁 냄새를 맡는다. 우리네 인간의 삶과 사회, 국가, 국제관계에도 그런 냉엄한 생존경쟁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떠올린다. 기존 세력이 쌓아놓은 장벽을 뚫고 새로운 세력이 진입할 때, 거기에 분쟁과 충돌이 일어난다. 해는 뜨고 지고, 또 뜨고 진다는 자연의 법칙을 잊고 오늘 모든 것을 독식하겠다는 처절한 싸움이 벌어진다. 인간에게 평화란 불가능한 것인가? 존중과 조화와 공존은 이상론자들의 꿈일 뿐인가?
■ 중국의 등장
두 달여 전, 미국의 언론들은 정보기관 내부의 비밀정보보고서를 보도했다. 중국이 추진한 군사력 강화계획 중 10개도 넘는 중요한 계획들을 10년이 넘도록 미국 정보기관들이 파악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중국이 극비리에 추진하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하여 미국 정보기관이 덜 주목했거나 가볍게 다뤘기 때문이라고 자체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결국은 중국이 미국의 염려와 우려의 대상이 될 만큼 군사력을 증강시켰다는 얘기다.
지난해 10월 말, 중국의 한(Han)급 핵잠수함이 괌 부근 마리아나 바다 속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60년 전 미 해병대가 일본제국 해군을 패퇴시킨 이후 미국은 이 지역을 내해(內海)나 호수 정도로 간주했다. 미국이 3척의 공격잠수함을 배치하고, 7척을 추가배치하려고 계획 중인 곳이다. 이 곳에 처음으로 중국의 한(Han)급 잠수함이 등장한 것이다.
마리아나 바다는 일찍이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해양강국들의 활동무대였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혼자 평안하게 사용하던 서태평양 해역을 이제 중국이 나누어 쓰자고 나선 셈이다. 미국은 이 해역을 중국과 오순도순 같이 사용하는 아량을 보일 것인가?
이후 이 잠수함은 일본의 오키나와 부근으로 진출했다. 괌에서부터 P-3C 해상초계기로 이를 추적하던 미국은 그 위치를 일본 해상자위대에 통보했다.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헬리콥터로 잠수함 탐지용 소나를 내려 수색하던 중 11월 9일, 오키나와 부근 이시가키 섬 남쪽에서 이 잠수함을 탐지했다. 그 잠수함은 국제법을 어기며 일본의 두 섬 사이를 잠수한 채 통과한 후 중국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중국에게 강력하게 항의했고 중국은 즉시 사과하면서 기술적 문제로 일본 수역에 잠입하게 됐다고 밝혔다.
■ 중국의 군사력 증강
제1차 이라크 전쟁, 코소보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최근의 제2차 이라크 전쟁은 가공할 현대전 무기체계의 전시장이었다. 그 위력을 실감한 중국은 추진 중이던 군사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신 정밀 무기체계에 관한 한 외국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을 통해 획득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외국의 기술 협력선, 특히 러시아에 크게 의존한다. 무기체계를 해외에서 도입할 때 최신 군사기술과 함께 공급받는 것을 조건으로 하면서 필요한 방산기술을 축적하고 그것을 토대로 차세대 무기 개발에 나선다.
중국은 군사력 투사능력(Power Projection Capability) 확대에 군비투자를 집중하면서 해상통제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공중조기경보와 공중급유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남중국해까지 작전의 범위가 확대됐다. 앞으로 최신 전자정보능력을 확보하면 서태평양에 이르는 광범위한 수역 안에서 외국군이 벌이는 군사활동을 탐지, 식별,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중국 해군이 보유하게 된다.
대만사태가 발생할 경우 외국 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억지(deter)하고 패퇴(defeat) 또는 지연(delay)시키기 위한 해상거부(Sea-denial) 능력과 접근봉쇄(Anti-access)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단거리, 중거리 미사일을 통해 지역 내 목표에 직접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함정공격용 초음속순항미사일(SS-N-22 썬번)은 대만해협에 접근하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과 군수지원함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은 정보, 전자, 종심타격(縱心打擊ㆍDeep Striking) 능력면에서 미국과의 기술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비대칭 전력의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100억 달러를 들여 잠수함을 사들이거나 개량하여 2010년에는 현재보다 30% 정도 늘어난 85척을 보유할 예정이다. 잠수함은 비대칭 전력의 상징이다. 8월 2일에 일본은 2005년 방위백서?발표했다. 작년에 있었던 중국 잠수함의 일본영해 침범사실을 들어 중국의 위협을 강조했다.
미국도 7월 19일 발표한 국방부의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력에 관한 2005년도 보고서’ 를 통해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 계획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간 두 자리 숫자 이상의 비율로 군비투자를 증가시킨 결과 대만과의 군사균형이 중국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이미 동아시아 지역 군사력 균형에도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유럽연합이 중국에 대해 시행하던 군사무기수출금지를 해제하려 할 때마다 미국과 일본이 반대한다. 유럽연합으로부터 최신 군사기술을 도입할 수 있으면 중국은 획기적으로 짧은 시일 이내에 군사력 현대화를 이룰 수 있다.
■ 능력을 가졌으면 적
중국이 대만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넘어 이제는 지역안보체제 전체에 위협이라는 인식을 미국은 이번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명확히 했다. 또 하나, 미국은 매 4년마다 방위계획서를 발표한다. 2001년에 발표된 계획서에서 부시 행정부는 위협에 기초한(Threat-Based Approach) 방위계획으로부터 능력에 기초한(Capability-Based Approach) 방위계획 수립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미국의 안보에 대한 실질적 위협에 따라 대응하지 않고, 위협이 될 만한 능력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그에 대응하는 방위계획을 수립한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능력을 보유한 나라이면 누구든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응한다는 무서운 발상이다.
이 발상대로라면 중국이 증강시키고 있는 군사력은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정책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순기능적 역할마저도 심각하게 왜곡시킬 것이다. 미-중 정치협력, 무역과 상호투자의 확대, 국제 다자관계에서의 중국의 역할확대, 주변국 안보의 안정화 기여 등 협력적 순기능적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이 어떻게 이 두 가지를 조화할 것인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중심이 되어 짜놓은 동아시아, 서태평양, 인도양의 질서에 중국이라는 사라졌던 종(種)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는 미국과, 이미 형성된 질서에서 일정지역의 대표 종(種)으로 자리잡은 그 동맹국들이 펴는 반중국 연합전선이 서서히 가동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서가 태동할 때, 언제나 그때 엄청난 인류적 비극이 따라왔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고 춥다. 다음 회에는 동아시아의 또 한 축인 러시아의 해군력을 살핀다.
윤석철 객원기자
◆중국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군사력 증강
- 새로운 장거리 순항미사일 개발
- 미국 이지스(Aegis) 무기체계의 기술을 도용했다고 의심받는 전함 건조
- 유안(Yuan)급 공격잠수함 개발-인터넷 뉴스에 그 잠수함 사진이 보도될 때까지 미 정보기관은 모르고 있었다
- 정밀유도탄(PGM. Precision Guided Munition) 개발. 공대지 미사일(Air-to-Ground Missile)과 새로운 정밀 탄두의 개발
- 미국의 항공모함을 목표로 한 새로운 함대함(Surface-to-Surface) 미사일 개발
- 신형 무기의 수입, 특히 러시아의 잠수함, 구축함 그리고 전투기와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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