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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계천 금연, 혼분식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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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청계천 금연, 혼분식 운동

입력
2005.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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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 한 두 가지는 갖고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도청이네, 주5일제네 안주 삼던 중 한 친구가 그런 기억을 떠올렸다. 서울시가 청계천 산책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라는 뉴스가 안주로 올랐을 때였다.

“30년도 더 전이다. 그 시절 혼분식 운동이라는 것이 벌어졌다. 한국에는 쌀이 부족했다. 당시 정권은 쌀밥만 먹으면 각기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는 등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엄포를 놓으며 국민들에게 절미와 혼분식을 장려했다. 우리가 다니던 국민(초등)학교에서는 학급별로 일 주일에 한 번쯤 도시락 검사를 했다.

형편이 나아서 평소 쌀밥을 먹던 집에서는 그날이면 아이 도시락에 일부러 보리쌀을 섞어서 들려 보냈다. 돌이켜 봐라, 점심 시간에 일제히 그 김치 냄새 나는 도시락을 열어놓고 선생님이 일일이 검사하고 다니는 꼴을.”

여기까지는 40대 이상이면 대부분 공유한 정경일 것이다. 이 친구의 기억은 그 도시락 검사 다음에 각인됐다. 외식할 곳도 없던 그 시절 선생님도 점심 시간이면 집에서 찬합에 담아 가져오는 도시락을 드셨다.

그 친구가 그 날 우연히 선생님의 도시락을 구경하게 됐다. “회초리 들고 혼분식을 강요하시던 선생님의 도시락에서 눈처럼 하이얀 쌀밥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때를 아시나요’가 아니다. 이 친구의 기억은 단지 쌀밥이나 혼분식에 대한 것이 아니다. 거짓과 불신에 대한 기억이다. 그는 “그 기억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회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인식을 그때부터 하게 된 듯 하다”며 “당시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쌀막걸리도 별도로 주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또 혼자 웃었다”고 했다. 도시락 검사는 아이들에게 검사가 있는 날만 쌀밥을 싸가지 않으면 된다는 요령과, 선생님조차 위선을 부린다는 현실을 자연스럽게 학습시킨 셈이다.

더 나쁜 것은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거짓을 행하고 그것을 서로 용인하는 비굴함까지 가르친 것이다. 지금 국정원의 도청 사건이 거짓말에 거짓말을 낳으며 온 국민이 서로를 못 믿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서울시가 청계천 산책로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위반자에게 벌금을 물리겠다는 발상은 어떤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은 “쓰레기통을 두지 않는 청계천 산책로에서 흡연을 하면 꽁초를 아무데나 버려 수질과 주변 환경을 해칠 수 있고, 좁은 산책로에서 담배를 피우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나라의 쌀 사정과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벌였던 혼분식 운동이 한 친구에게 전체주의적 폐해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남겼듯, 일개 하천의 환경과 주위 사람들의 건강을 이유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야외에서의 흡연을 금지시키겠다는 발상이 끔찍하기만 하다. 청계천 복원공사 세금을 걷으면서 흡연자는 면제라도 해주었다는 건가?

서울시는 그보다는 ‘희생자를 찾을 수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시내 대기오염을 줄이는 방안에나 골몰하기 바란다. 지난해 서울의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는 61㎍/㎥였다. 서울시는 전년도보다 나아졌다며 자랑했지만 이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고, 뉴욕(22㎍/㎥) 런던(27㎍/㎥) 도쿄(32㎍/㎥ㆍ2003년 기준)의 2~3배다.

미세먼지 30㎍/㎥ 차이는 평균수명을 3년 이상 감축시킬 정도로 치명적이며, 특히 아이들에게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 요즘 학계의 정설이다.

하종오 사회부 차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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