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소환은 삼성 수사의 시작일 수도 있고 끝일 수도 있다. 이런 저런 고려로 몸을 사리는 검찰이 “삼성 봐주기”라는 비난여론 때문에 한걸음을 겨우 뗐지만 내실 있는 수사로 이어질지, 면피성으로 끝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우선 검찰 조사를 받는 이 부회장의 신분은 도청의 피해자이면서 비리 혐의의 피고발인이다. 검찰은 이 본부장이 1999년 재미동포 박인회(구속)씨로부터 도청테이프와 관련해 돈을 요구받은 경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거의 드러나 있어서 조사를 쉽게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의 초점은 참여연대가 고발한 이 본부장의 배임ㆍ횡령, 뇌물제공 등의 혐의다. 97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현 주미 대사)과 여야 대선 후보들에게 총 100억원대의 불법자금을 전달하고, 그 대가로 삼성이 기아차를 인수할 수 있도록 지원받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의혹이다.
검찰도 이 부회장을 상대로 도청테이프에 들어있는 이 같은 의혹이 실행됐는지, 그 과정에 불법이 있었는지에 밝히는 데 수사의 초점을 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고발된 내용에 대해 수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많다. 무엇보다 검찰의 수사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도청 자료를 근거로 수사를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고, 검찰로선 이를 부담으로 느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더구나 8년이나 지난 일이어서 당사자들이 부인할 경우 물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수사 성과에 의문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통상 기업 비리 조사를 할 때는 실무자들을 먼저 소환해 조사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움직임도 없다. 검찰이 이 본부장에 대한 1차 조사만 마친 후 삼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 여부는 추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검찰은 ‘하는 시늉’만 하다가 특검에 수사를 넘길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98년 ‘세풍’(稅風ㆍ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주도로 대선자금을 모아 이회창 후보측에 제공한 사건) 수사 때 검찰이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단서를 어느 정도 확보했는지도 관심거리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삼성의 60억원 대선자금 제공에 대해 검찰은“당시 정치자금법상 불법이 아니어서 기소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자금의 출처가 회사 공금으로 확인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처벌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과 함께 고발된 이건희 삼성 회장과 홍석현 대사의 소환 여부에 대해서도 검찰은 “원칙적으로 검토할 필요는 있으나, 실제로 조사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검찰은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지적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번사건의 경우 검찰이 과거에 처리했던 삼성 관련 어느 사건보다도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 있어 검찰로선 이래저래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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