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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예술가의 '인사동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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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예술가의 '인사동 나들이'

입력
2005.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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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국적을 떠나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화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을 노래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유명 재일동포 화가 2명이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이들에게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지만 북한 국적에 북한에서 주는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 등의 칭호까지 받은 바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민족예술인총연합회(민예총)와 사단법인 통일맞이 초청으로 10~1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리러 아트사이드(02_725-1020)에서 2인전을 갖는 홍영우ㆍ고삼권(66) 화백.

홍 화백은 1992, 93년 도쿄에서 열린 ‘남북 코리아 통일 미술전’에서 해외동포 화가들의 참여를 책임지면서 국내 화단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에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초청으로 ‘특별 기획전 고구려’의 북한측 부단장 자격으로 처음 방한해 남북 유물 교류의 산파 역할을 맡기도 했다.

2인전으로 묶기는 했지만 두 작가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홍 화백은 전통 물감을 사용한 수채화로 장터 풍경 등 서민의 체취가 물씬한 풍속화를 주로 그리는 반면 고 화백은 유화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화폭에 담는다. 각각 40점과 30점을 출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한데 묶어주는 동력은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민족의식’이라고 지적한다.

9일 인사동에서 만난 홍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60년대 초 아톰으로 유명한 데스카 오사무가 애니메이션 회사를 차리고 직원을 뽑았어요. 만화에 관심이 있던 터라 응시해 별 어려움 없이 최종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조선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채용이 거절되더군요.” 그때까지 한국어도 제대로 몰랐던 홍 화백은 이를 계기로 ‘민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이후 차별과 모멸을 역동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길을 궁리하다 자연스레 장날이나 주막 등 서민들의 애환에서 소재를 찾게 됐다.

한국에 처음 왔다는 고 화백은 “조선인의 신분으로는 방 한 칸도 빌리기 힘들어 한때는 일본 사회에 굴복하고 싶기도 했다”며 “그럴수록 그림을 통해서라도 민족의 모습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하니 창작의욕이 더욱 불탔다”고 말했다. 출품작도 광복, 한국전쟁 등을 소재로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희구하는 내용이 많다.

70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재일동포 사회는 지금 ‘풍화(風化)’라는 새로운 적을 맞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일본인들의 차별과 싸워 왔지만 아래 세대로 내려갈수록 ‘나는 누구인가?’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더해지는 것이지요. 자라면서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일본인화되는 3, 4세 동포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역할이 막중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붓을 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구동성이었다.

두 사람은 여러 통일행사에도 참석하고 22~28일 제주시 학생문화원(064_724_1691)에서도 전시회를 한 뒤 3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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