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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정치논평] 소문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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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정치논평] 소문불패

입력
2005.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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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인기를 끌었던 중국영화 중에 ‘동방불패’라는 영화가 있다. 중국에 동방불패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소문불패’가 있다. 소문으로 나도는 의혹 쳐놓고 패하는 것, 즉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이다.

●DJ정부의 도청 거짓말

예를 들어, 김영삼 정부 시절 김현철의 비리가 소문으로 나돌더니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김대중 정부 역시 김홍업, 김홍걸 등 아들들에 관한 소문들, 그리고 각종 게이트들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나아가 남북정상회담 대가용 대북송금 소문까지도 사실이었다. 이제는 이부영 열린 우리당 전대표가 한나라당 시절 제기했던 김대중 정부의 불법도청 의혹, 그리고 휴대폰 도청 의혹도 모두 사실이라고 국정원이 자백을 하고 말았다. 안타깝지만 역시 소문불패다.

김대중 정부의 도청 사실에 대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그럴 수 있느냐는 등 네티즌들이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김 전대통령이 도청 등 공작정치의 최대 피해자이고 노벨평화상에 빛나는 인권 대통령이니 도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한국정치의 추한 현실에 대한 무지를 토로하는 것에 불과하다. 김대중 정부의 여러 정책들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면 도청사실에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권대통령의 이미지와 노벨평화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인권정책에서 김 전대통령이 역대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보안법 구속자와 양심수가 오히려 김영삼 정권 때보다 많았다.

또 야당시절 여당의 의원 빼내기에 대해 헌정 파괴행위라며 극렬히 저항했지만 집권하자 여소야대를 깨고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논리에 의해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쓰레기 야당의원까지 빼내왔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부는 개혁을 방해하는 ‘수구꼴통’ 한나라당의 비리와 비밀을 파악해 개혁추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신들의 도청은 과거정권의 도청과 달리 필요악이며 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화가 나는 것은 김대중 정부도 도청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도청에 대해 너무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도청의혹이 제기되던 99년 김대중 정부는 도청은 결단코 없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중앙일간지에 “국민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요”라는 광고를 낸 바 있다. “국민여러분,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 어차피 우리가 듣고 싶은 건 다 듣습니다”는 문안 중 뒷부분이 편집 착오로 날라가 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안타까운 것은 국정원이 최근 들어 정보기관으로는 유례없이 민간위원들이 참여하는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까지 만들어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다시 태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터져 반성의 노력이 다소 빛을 바래게 된 점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번 문제들은 노무현정부 이전에 행해진 것들이다.

●지금이라도 밝혀진건 다행

다만 현 정부도 김대중 정부 이후 도청은 없었다고 그동안 거짓말에 동참해 온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의 불법도청 문제가 터지자 국정원이 뒤늦게나마 김대중 정부 시절의 도청과 휴대폰 도청사실까지도 미리 고백하고 나선 자체가 과거 잘못을 청산하기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이 위원회의 활동이 끝나기 전에 터진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위원회는 국정원의 과거의 도청관행에 대해 포괄적인 분석과 비판은 했겠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인 사실을 밝히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위원회의 활동이 끝낸 뒤 이 문제가 터져 나왔다면 위원회가 국정원의 과거 잘못들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 했다고 비판을 받을 것이고, 그 결과 중요한 과거청산 성과들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 당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질 뻔 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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