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통화를 도청해 왔다는 국가정보원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사업자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 등 이통사들은 8일 국정원 발표로 드러난 전파 가로채기(intercept) 방식의 도청 시도에 대해 별도의 기술적 대책이나 정책적 대안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런 식의 도청 기술에 대해 알지 못해 보완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TF와 LG텔레콤 역시 “전파 가로채기 방식의 도청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 모든 휴대폰 통화가 도ㆍ감청 시도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업체들이 대책 없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2003년 복제 휴대폰을 이용한 도ㆍ감청 가능성이 제기 됐을 때 재빠르게 대응했던 것과도 극명히 비교되는 처사다.
이통사의 서비스를 관리 감독하는 정통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통부 관계자는 “국정원의 도ㆍ감청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며 “현재 정통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발을 뺐다.
정통부는 도ㆍ감청의 빌미가 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통 서비스의 보안 약점 파악은 커녕 국정원과의 협조 채널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단체들은 “통신 인프라를 담당한 주무 부처와 서비스 제공 업체가 마치 남의 일인 양 팔짱만 끼고 있다”며 “국민과 고객의 불안감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통부의 경우 법무부가 통신비밀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합법적 감청을 추진하고 있는데도 소관타령만 하면서 국민의 ‘도청 공포’를 방조하고 이통사들을 혼란에 몰아 넣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때문에 소비자단체와 업계 일각에서는 비화(秘話) 휴대폰 판매를 허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03년 초 팬택계열의 비화폰 출시 포기는 정부와 이통사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며 “국민의 사적 통화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면 비화폰이라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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