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울의 낮 기온이 35도로 치솟아 자동차 배기열과 대량으로 가동되는 에어컨 배출열을 합치면 실제로는 체온을 훌쩍 넘어섰다. 대도시 도심에 여러 군데 열섬이 형성되고, 그 섬에서 벗어나려는 피서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여름 휴가를 바다 한 가운데의 섬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다. 내륙에 비해 시원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적하기까지 해서 더위와 사람 사이의 부대낌을 함께 피하는 데 그만이라는 찬사가 잇따른다.
■‘물보다 사람이 많은’ 바닷가 등 일부 유명 피서지를 찾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사람들은 ‘섬’을 찾아 휴가를 떠난다. 물론 지리적 섬은 아니다. 인적이 끊긴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산사에서 선방 체험을 하는 사람들, 확실하게 방에 콕 박히는 사람들 모두가 ‘섬’을 갈구한다.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 일상성을 벗어 던질 때 만나게 되는 의외성의 공간, 추상적으로 단절된 공간이다. 그 ‘섬’에서 본연의 고독을 만나고, 그 동안 얼마나 멀리 떠내려 왔는지를 돌아보고 소스라친다.
■결국 섬을 찾으려는 본능적 행위에서 지리적 조건은 보조 장치일 뿐이다. 장 그르니에의 수필집 ‘섬’의 ‘케르겔렌 군도’ 편에서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억세고 활동적이고, 남의 사정을 궁금해 하기보다 자기 일에 더 골몰하는 그 대단한 백성들 무리에 섞인 채 사람의 왕래가 잦은 대도시가 갖춘 편리함을 골고루 누려가면서 나는 가장 한갓진 사막 한가운데서 사는 것 못지않게 고독하고 호젓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잠시 작은 섬으로 떠났다가 끝내 더 큰 섬으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섬은 결코 단절의 공간, 고독의 공간이 아니다. 정현종의 시 ‘섬’은 너무나 명료한 노래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는 그곳에 가고 싶다.’ 섬은 더 이상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고독의 표상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끊어져 섬으로 존재해 온 사람들을 잇는 소통의 통로이자 화해의 가교이다.
우리 모두가 향해야 할 궁극의 공간이다. 8월이면 늘 사회 곳곳의 갈등과 단절, 남북한 및 한일 양국 갈등의 ‘섬스러움’이 새삼스러워진다.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 융화의 섬으로 향하는 우렁찬 발걸음 소리를 몽상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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