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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1,000가마야, 北에 가서 통일 밑거름 되거라"/ 평택 농민 홍한표씨 개인으론 최초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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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1,000가마야, 北에 가서 통일 밑거름 되거라"/ 평택 농민 홍한표씨 개인으론 최초전달

입력
2005.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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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들아, 잘 가거라. 부디 남북 통일의 밑거름이 되어 이 노인네 죽기 전에 좋은 소식을 듣게 해주어.”

북으로 향해 출발(9일)할 쌀 1,000가마가 8일 트럭에 실리는 것을 바라보는 농사꾼 홍한표(73)씨의 주름진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돼서도 웃음으로 가득했다. 이 쌀은 홍씨가 개인 자격으로 북한에 보내는 것이다. 개인이 북한에 쌀을 보내는 것은 홍씨가 처음이다. ‘어르신’의 좋은 뜻을 돕기 위해 이날 경기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 미곡처리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도 즐거움이 넘쳤다.

농사꾼 홍씨가 북한에 보낼 ‘선물’의 분량은 80㎏ 포대 1,000개(80톤)에 달하며 시가로는 1억6,000억원 어치다.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소박한 농민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많은 양이다.

“1984년 우리 마을에 물난리가 났어. 지대가 낮아서 논밭은 물론 집까지 물에 잠겼지. 아니, 그런데 북에서 우리를 돕겠다고 쌀을 보내왔습디다. 어찌나 고맙던지….”

당시 중학생이었던 홍씨의 아들 성동(40)씨는 20년 전을 떠올리며 “온 마을이 북한이 지원해준 쌀로 한 달은 연명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 전부터 “내가 기른 쌀이 남북 통일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온 홍씨는 북한의 지원을 받은 것을 계기로 평소의 ‘바람’을 구체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밤낮으로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에 쌀을 보내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우선 북한에 쌀을 지원할 정도로 홍씨의 생활이 여유롭지 않았고 개인의 대북 쌀 지원 전례가 없어 절차와 방법이 막막했다. 쌀 조달은 생각치도 않은 계기에 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황구지리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택으로 이전해 오게 될 미군기지 부지에 포함되면서 토지수용 보상금을 받게 된 것이다. 황씨는 태어나 자란 고향을 떠나며 받는 돈으로 오랜 기간 꿈꾸던 ‘숙원 사업’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아직 보상금이 나온 것도 아니고, 얼마를 받을지도 정확히 몰라요. 그렇지만 북쪽 사람들이 너무 배고프다는 소식이 들리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지난달 가족들에게 결심을 전했습니다.”

북으로 갈 쌀 1,000가마는 홍씨가 지난해 수확했던 분량에 다른 농가로부터 구입한 쌀을 보탠 것이다. 대북 지원절차 등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측의 도움을 받았고 쌀을 실어 나를 25톤짜리 트럭 네 대는 홍씨의 뜻을 전해들은 화물연대에서 선뜻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들 트럭은 9일 도라산역을 출발, 육로를 통해 개성으로 향할 예정이다. 쌀이 가는 길에는 연로한 홍씨 대신 아들 성동씨와 평택농민회 김덕일 회장, 전농 박민웅 사무총장 등이 함께하기로 했다.

성동씨는 “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하시고 과수 농사를 지으시며 농약 때문에 얻으신 폐 질환 때문에 몸이 불편하신데도 언제나 북한에 쌀을 보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해오셨다”면서 “아버지의 뜻처럼 이 쌀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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