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스님들과 읍내 신부님들이 족구 대결을 벌였다. 네트를 넘나드는 공은 불교가 무엇인지, 천주교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토요일인 6일 오전 11시 30분. 산 좋고 물 맑은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 옆에서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염주와 묵주를 잠시 내려놓고 왁자지껄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가 주최하는 ‘제2회 월정사 주지배 평창군 족구대회’의 오픈 세리머니가 열리고 있었다.
춘천교구 소속 강릉ㆍ평창 지역 신부팀이 검은 사제복에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하자 풍물패까지 동원한 응원단이 환호성을 질렀다. 수녀와 신도 수십여 명은 “신부님 힘내세요!”라고 쓴 플래카드를 흔들어댔다. 회색 승복에 고무신을 신은 월정사팀이 나오자 이번엔 불자들이 목청을 높였다.
첫 세트는 예상을 뒤엎고 신부님들의 승리였다. 응원석에선 ‘스님들의 경기를 비디오로 분석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는 웅성거림이 나왔다. 축구강팀으로 유명한 월정사팀이 방심한 탓이었다.
“히얏! 아자~.” 비상이 걸린 월정사팀은 관행 스님의 대포알 같은 슛과 대선 스님의 드롭 슛을 무기로 2세트를 설욕했다. ‘족구 9단’으로 통하는 법상 스님은 소림사 권법을 연상케 하는 발놀림으로 탄성을 자아냈다.
최종 결과는 세트스코어 2대 1로 신부님팀의 승리. 춘천교구 교육국장 오세민 신부는 “이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추억은 없을 것”이라며 “스님들이 자비를 베풀어 봐 주신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한바탕 땀을 쏟은 뒤 함께 산채비빔밥을 먹는 이들에게 경기 결과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족구 대결이 성사된 것은 강릉교도소 재소자를 돌보던 김학배 신부가 같은 일을 하던 월정사 관행 스님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신부가 된 지 12년간은 물론 스님들과 공을 차 보긴 처음입니다. 경기를 계기로 스님들과 친해졌습니다. 종교 간 벽을 허물고 인류의 화해를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김 신부는 많이 흐뭇해 했다.
종교 간의 화합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월정사 스님들은 지난 4월 지역 목사님들과 축구 실력을 겨루기로 했는데 일부 인사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작년 2월 부임 이후 “산중 불교는 이제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뜻을 실천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입니다.
종교 간에 큰 분쟁은 없지만 꽤 거리가 있는 편이지요. 오대산에 주석했던 탄허 큰스님은 “천하무이도(天下無二道), 성인무양심(聖人無兩心)”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종교는 진리라는 측면에서 하나이며, 성인에게는 우리 종교니 너희 종교니 하는 분별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정념 스님이 축구와 족구를 ‘주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내년에는 지역 교회 지도자들과의 축구ㆍ족구 경기를 다시 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창=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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