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에 대한 원ㆍ엔 환율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산업계를 지배해온 공식은 ‘100엔=1,000원’은 유지돼야 수출 경쟁력이 확보된다는 것.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일본보다 중국과 경합하는 품목이 늘어나면서 원ㆍ엔 환율 추락에 대한 공포감이 줄어드는 대신, 위안화 동향이 업계의 관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가져온 우리 경제 변화의 한 단면인 셈이다.
최근 원ㆍ엔 환율 추이를 보면 올 초까지 100엔=1,000원대의 10대1 비율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9대1 비율마저 위태롭다. 지난달 5일 100엔당 941.5원하던 것이 지난 5일 907.2원으로 떨어졌다. 한달여만에 34원이나 추락한 것. 달러에 대한 원화의 절상 속도가 엔화보다 가파르다는 얘기이다. 지난 4일에는 장중 한때 800원대로 내려 앉기도 했다. 특히 지난 5일 일본 참의원의 ‘우정사업 민영화’ 법안 부결로 정치적 혼란이 고조되면서 엔화 약세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로 인해 일부 경제단체에서는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자동차, 조선, 전자산업 등에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원ㆍ엔 환율이 하락할 경우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지만, 위안화 절상으로 자동적으로 헤지(위험 분산)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 등 세계시장에서 중국 기업과의 경합 제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위안화 절상이 중국 제품에 대해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는 얘기이다.
무역협회 산하 무역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수출품 가운데 중국과 겹치는 품목은 1996년에는 전무했으나, 2002년 4개, 2004년에는 컴퓨터, 컴퓨터 부품, TV부품, 휴대폰 등 5개로 늘어났다. 또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위안화가 절상되면 중국의 성장세 둔화에 따른 대중 수출 감소 효과보다 중국제품에 대한 국산 경합 제품의 가격 경쟁력 향상에 따른 수출 증가 효과가 더 커 위안화 10% 절상시 제3국으로의 수출은 26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수출 구조의 변화도 원ㆍ엔 환율 하락의 파괴력을 반감시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수출이 늘어날수록 일본으로부터의 중간재 부품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 원ㆍ엔 환율이 떨어질수록 오히려 일본에서 부품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해외 현지 생산을 통한 매출도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환율에 대한 민감도가 예전 같지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수출과 수입이 거의 5대5에 달하며 전체 매출의 85%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은 김재천 조사국장은 “일본은 점점 더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특화하는 대신, 중국과의 경합 제품은 갈수록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에 있어 원ㆍ엔 환율보다 위안화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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