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도청기록 공개 문제를 논란하던 언론이 독일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옛 동독 국가안전부, 슈타지(Stasi)의 대내외 도청기록 등 사회감시 자료를 통일 후 어떻게 처리했는가 하는 얘기다.
용케 그럴듯한 선례를 떠올린 건 가상하지만 도청 피해자의 비리나 범죄는 처벌하지 않은 것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우습다. 우리 사회의 빗나간 논란에 얽매인 나머지, 슈타지 파일 공개 자체가 동독체제의 범죄성을 확인하고 그릇된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는 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독일은 도청 등 국가범죄를 지휘한 슈타지 간부들을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서독 요인 수만 명을 도청한 기록을 포함한 슈타지 파일은 오랜 논쟁 끝에 피해 당사자 등에게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용하기로 했다.
동독체제가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실상을 피해자들이 직접 확인, 상처를 치유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였다. 이에 따라 특별법에 당사자 아닌 제3자의 신상은 지운 채 열람하도록 하고, 특정인 기록을 본인에게 불리하게 쓸 수 없도록 못박는 등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
■도청테이프만 10만 개에 이르는 슈타지 파일은 500만 명이 열람했고, 여러 안전장치 덕분에 일반 국민의 피해가 논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일 전후 혼란기에 유출된 파일을 정치공작에 이용한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통일직전 동독의 과도민주정부를 이끈 드메지에르가 슈타지 협조자였다는 기록이 언론에 폭로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물망에 오르던 드메지에르는 졸지에 정치생명을 잃었고, 명망 있는 동독출신 정치인 여러 명이 비슷한 곤욕을 겪었다. 인권운동가 출신의 슈타지 문서관리청장까지 도마에 올랐다.
■서독 정보기관은 베를린장벽 붕괴직후 동독 시민들이 슈타지 본부에 난입한 시위를 부추긴 뒤 혼란을 틈타 중요 기록을 빼돌리는 등 여러 경로로 슈타지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파일을 교묘하게 손질, 언론에 흘려 동독 정치인들을 팽하는 데 썼다는 의혹이 많다.
어디든 정보기관의 사악한 감시기록은 사회가 지혜롭게 분별하지 않으면 음험한 정치공작에 쓰일 수 있다는 교훈으로 들을 만하다. 대통령부터 시민단체까지 국가의 도청 범죄보다 도청으로 엿들은 비리가 더 사악하다고 떠든 사회가 그런 지혜에 이를 수 있을까 싶다.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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