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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법치와 정치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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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법치와 정치의 갈림길

입력
2005.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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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안기부 도청조직인 미림팀장 공운영씨로부터 압수한 도청테이프 274개와 녹취보고서 13권의 처리를 놓고, 정치권 법조계 시민단체 등 우리 사회가 벌이는 논쟁으로 참을 수 없이 무더운 여름이 더욱 숨막히게 느껴진다. 우리 논설위원실도 뜨겁게 달아오를 때가 있다. 바로 이 도청테이프 파문을 놓고 벌어지는 토론 때문이다.

토의를 통해 그날그날 사설의 논지를 정하는 것이 논설위원들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도청파문의 사회적 논의가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사설을 쓰게 되고 우리는 토론한다. 때로는 의견이 충돌,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도청테이프 공개 대립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와 이학수 삼성비서실장 간의 정치자금 거래를 놓고 오간 대화가 담긴 도청테이프 내용이 처음 보도됐을 때, 누구나 예견할 수 있듯이 세상은 온통 언론과 재벌과 정치권의 비리유착을 놓고 비난의 물결이 일었고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고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 와중에서도 우리가 보았던 관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에 대한 비판이고, 둘째가 도청테이프에 든 내용의 처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에 대한 평가였다.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을 비판하고 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법도청 사실을 폭로해서 그 실체를 세상에 알렸지만 범법자로 몰리게 된 MBC기자의 보도에 대한 평가나 도청테이프 내용의 공개여부를 놓고는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제 김승규 국정원장은 YS정부는 물론 DJ정부에서도 휴대전화까지 대상으로 불법도청이 이뤄졌음을 공식 실토함으로써 도청문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행해진 정보정치의 유산 처리를 놓고 우리 사회는 커다란 진통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다행인 것은 그 동안 불법도청을 놓고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면서 혼란스러움이 상당히 증발하고 문제 해결의 갈래가 보다 명료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녹음테이프 공개문제를 법의 원칙에서 접근하느냐, 정치적으로 접근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법의 원칙은 테이프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의 녹음테이프는 국가기관에 의해 사생활과 통신비밀이 침해된 결과물이다. 이 테이프를 단서로 수사하거나 재판의 증거물로 제출할 수 없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지배적 견해인 듯하다.

즉 미국 대법원 판례에서 유래된 "독나무(毒樹)에 달린 열매는 독과일(毒果)이니 먹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입각한 문제해결 방식이다. 공운영씨가 가졌던 테이프 뿐만 아니라 휴대전화까지 도청한 안기부 발표를 감안하면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도청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여 정치권과 재계의 불법과 비리전모를 속시원히 밝혀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은 거세다. 이와 같은 국민정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권력과 금력에 기대어 저지른 비리의 폐해가 불법도청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권력 주변의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알 수 있겠느냐며 알권리의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청와대를 비롯해 여야는 서로 다른 정치적 셈법을 갖고 특별법제정과 특검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법이든 특검이든 그것이 정치적 논쟁의 여과 기능을 넘어 테이프의 공개 문제를 건드리게 되면 위헌논쟁 등 법 원칙과의 충돌을 다시 부를 게 분명하다.

●성숙한 토론과 지헤 절실

테이프 공개불가는 법적으론 단순하지만 정치적으로 복잡한 여진이 남고, 테이프 공개는 정치적으로 일시 매력적일지 모르지만 법의 원칙을 파괴해서 두고두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처한 딜레마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이 아마 국민의 성숙한 토론자세와 정치 지도자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도청은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명제를 생각하며 토론이 더욱 깊어질 때, 우리사회는 법치와 정치의 조화로운 조합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한다.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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