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이야기가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본격적으로 유대인 탄압을 시작한 1938년, 로자 리들이 한 유태인을 도우려다 전차에 치어 죽은 데서 시작했다면 독자는 정의를 강조하는 강한 메시지를 강요당했을 것이다.
혹은 1944년 어느 일요일 아침, 한 집에서 살구잼 병이 부엌 창문으로 날아가는 사건으로부터 시작했다면 전쟁의 참상과 전후의 복구과정을 그리느라 길고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1978년, 열한 살 소녀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편의 재미있는 판타지가 되었다.
가만 있어도 거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나스티. 그러나 겁이 많아 고민인 나스티는 매사에 용감한 티나가 부럽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게 된다. 티나가 늘 걸고 다니는 목걸이 펜던트에 새겨진 볼이 포동포동하고 날개가 달린 어린 아이의 얼굴이 그 비밀이었다. 티나는 자랑스럽게 자기의 수호천사라고 말한다.
혼자 집을 보던 어느 날 밤, 무서운 장면이 나오던 TV가 저절로 꺼진다. 며칠 전부터 어렴풋이 그 존재를 느끼던 나스티에게 유령 로자 리들이 나타난 것이다.
뚱뚱하고, 둥글고 작은 코에 동그란 안경을 걸쳤으며, 뺨은 축 처진 로자이지만 나스티는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하고, 로자는 자기는 유령이라 천사가 될 수는 없으니 수호유령이 되어 주겠다고 한다.
이제 로자와 나스티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스티는 학교에서 생긴 일들, 특히 어려움에 처한 친구나 불합리한 선생님들에 대해서, 로자는 자기가 노동자 편에 서는 유령이 된 연유, 유령이면서도 날지 못하고 폐쇄공포증을 가진 사연을 통해 지난 시대를 알려준다.
수호유령이 생긴 나스티는 달라진다. 단짝 친구 티나와도 놀지 않고, 좋아하는 남자애 생일 파티에도 안 가고, 매일 오후 다락방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혼잣말을 자주 한다. 걱정 끝에 다락방에 따라 올라가 목소리를 들은 엄마와 아빠 앞에 마침내 로자는 모습을 드러내고 이제 그녀는 온 가족과 관계를 맺는다.
소심하고 독점욕이 강하던 나스티가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에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수호유령이 나스티로 하여금 마음 속에 있던 용기를 스스로 찾고, 사건의 드러난 현상 뿐만이 아니라 이면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시대의 어려웠던 삶을 재미 뒤에 살짝 숨겨 효과적으로 들려주는 작가의 솜씨는 대단하다. 그래서 한 아이의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지만 갈수록 많은 내용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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