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리에서 몇몇의 스캔들을 안주 삼던 중 “그는 정갈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누가 불쑥 던진 농담이 좌중을 뒤집었다. “정갈하다는 게 들키지 않는다는 뜻이야?” 웃지 말아야 할 일에 웃어버린 뒤의 공허함으로 무겁게 귀가한 날이었다. 정갈함이라….
이 에피소드는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1946~)의 장편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어렴풋이 유관하다. 책은 한 가상의 인물이 ‘보바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와 그의 문학에 얽힌 이런저런 혐의 및 찬사의 이면을 그가 남긴 작품과 일기 편지, 주변인들의 기록 등을 통해 탐문하고 뒤엎는 내용이다.
반스의 입장에서는, 과거란 ‘댄스파티장 안에 던져진 기름범벅의 돼지새끼’(19쪽) 같고, 제한된 배율의 망원경에 담긴 ‘사라져가는 해안선’(158쪽) 같은 것이다. 그것은 “끈으로 엮은 구멍들의 집합체”(57쪽)로서의 그물로 건져올린 과거의 조각들일 뿐이다.
이 소설은 결코 서사로 흥미진진하지는 않다. 화자인 한 아마추어 문학 애호가와 그의 아내를 제외한다면,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과 기록들은 논픽션이다.
그래서 19세기 유럽 사정이나 당대 낭만ㆍ사실주의 작가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독자라면 종횡무진 등장하는 고유명사와 현란하게 변주되는 형식으로 하여 난삽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총 15장의 각각은 연대기, 플로베르와 인연 맺은 동물들의 이야기, 작품화하고자 했으나 쓰지 못한 플로베르 외전, 비평과 그 비평에 대한 비평, 플로베르의 연인 루이즈 콜레의 고백담, 사전 등의 형식으로 쓰여졌다. 전체의 인상을 묻는다면, 플로베르 평전과 묵직한 문학에세이, 인간 군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사유로 이어나간 소설의 잡탕쯤이겠다.
책은 시종 푸근한 냉소와 유쾌한 신랄함으로, 다양한 층위의 독자들을 유혹할 만하다. 또 아이스크림 속 호두 살처럼 고소하게 씹히는 플로베르와 작가 자신의 재치 넘치는 문장들, 가령 “여자들은 약해졌을 때 음모를 꾸미고, 두렵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요.
남자들은 강할 때 음모를 꾸미고, 오만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요”(219쪽), “그는, 행복에는 세 가지 전제 조건-어리석음, 이기심 그리고 건강-이 있다고 했고,…”(235쪽), “가장 좋은 정치체제란 사라져가는 정치인데, 그 이유는 이것이 다른 어떤 것에게 길을 터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205쪽) “행복은 상상 속에 있는 것이지,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쾌락은 처음에는 기대 속에서 발견되고, 나중에는 기억 속에 남는다”(268쪽)는 어떤가.
소설 속 이야기는 플로베르가 작품 ‘순박한 마음’을 쓰면서 책상 위에 놓아두고 영감을 얻었다는 앵무새의 진품(이라고 선전되는) 박제가 여러 개임을 작중 화자가 알게 되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탐문해가는 과정이다.
막판에 화자는 그 같은 ‘진품’박제가 자연사 박물관에 무려 50개가 있었으며, 작가의 고향 루앙의 전시관에, 또 만년의 거처였던 …의 박물관에 판매됐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연사박물관에는 세 개의 박제가 남아있다. “어쩌면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이 세 마리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300쪽)
철저히 은밀해 ‘정갈’하든 실제 정갈하든, 모든 과거가 ‘플로베르의 앵무새’처럼 끝내 모호할 리는 없다. 구멍들의 집합체로서의 그물에도 걸릴 것은 걸리는 법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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