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구석 구석을 들여다보고 엿듣고 있는 미국의 정보ㆍ수사 기관이 자국내의 유무선 통신, 팩스, 전자우편 등 정보 전달 수단에 대해서도 무제한적 접근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1월 미 연방수사국(FBI)이 범죄 용의자의 e 메일을 감시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카너보어 (Carnivore) 시스템으로 인터넷 상의 모든 정보를 감청할 수 있다고 적시한 FBI 내부 문건을 공개, 미국 수사기관의 정보수집 능력을 다시 확인했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제한적 감시 활동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감시ㆍ감청 능력을 가졌다는 것과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미 수사기관의 감청 활동은 여러 법률에 의해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인터넷 감청, 유무선 대화 감청, 팩스 감청 등 각 분야를 규정하는 법 조항이 마련돼 있어 수사 기관은 각각의 활동에 대해 법원의 영장이나 명령을 받아야 한다. 즉 법원으로부터 전화 감청 허가를 받은 상황에서 용의자의 전자우편을 뒤졌다면 수사기관의 불법 증거 수집을 이유로 사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9ㆍ11 직후인 2001년 10월 26일 마련된 이른바 ‘애국법’은 테러 관련 수사를 벌이는 수사기관이 합법적으로 통신 감청을 할 수 있는 권한과 범위를 넓혀 놓았다. 수사기관은 테러 수사라는 이유를 달면 인터넷 전자우편 유무선 전화 등 사실상 모든 통신 수단을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영장 등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 국정원이 과거 해왔던 것처럼 영장없이 불법적으로 도ㆍ감청을 해온 사례가 보고된 경우를 미국에서 찾기는 어렵다.
물론 권한의 남용 가능성이 상존하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소리도 크다. 한 칼럼니스트가 “자유와 인권의 실종은 테러가 미국에 남긴 가장 깊은 상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대로 애국법 시행 이후 사생활과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조지 W 부시 정부가 애국법의 특정 부분을 악용하고 있다”며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부 장관이 애국법에 따라 새로운 기관을 이용해 도청과 감청을 하고 있는데 정말 필요한 때만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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