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으로서 이제 아버님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 같습니다. 여한이 없습니다.”
미국 여성 작가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 김 산(본명 장지락ㆍ張志樂ㆍ1905~1938)의 유일한 혈육 고영광(高永光ㆍ68)씨는 4일 한국 정부로부터 선친이 독립유공자(건국훈장 애국장)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영광씨는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중국인 어머니 자오야핑(趙亞平)씨가 고씨 성을 가진 중국인에게 개가하면서 성이 고씨로 바뀌었다.
베이징의 아파트 정원에서 영광씨는 파란만장했던 부친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중국 상무부의 전신인 대외무역경제합작부 과기국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한 그는 2003년 한국 정부에 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지 2년 만에 소원을 이루자 뿌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중국인 편모 슬하에서 중국인인 줄 알고 자란 영광씨가 아버지의 존재와 자신의 출생 내력을 안 것은 문화혁명 기간인 60년대 말. 서른 살이 넘어서였다. 어머니 자오씨(89년 사망)는 남편이 누명을 쓰고 죽자 행여 아들에게 불리한 영향이 미칠까 우려해 김 산의 아들임을 숨기고 새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했다. 그러나 문화혁명의 혹독한 자아비판 분위기에서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영광씨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가 숨져 기억은 없다. 하지만 ‘대한 독립운동가’ 김 산의 핏줄임을 확인한 뒤 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김 산은 중국 공산당원으로 항일투쟁을 하던 1938년 당시 공산당 본부가 있던 옌안에서 “트로츠키주의자이며 일본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영광씨는 78년 공산당 중앙조직부에 명예 회복 조사를 요청했고, 조직부는 6년 후인 84년 김 산의 명예를 공식 회복시켜 주었다. 영광씨는 이에 고무돼 두 아들과 함께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민족 성분도 회복했다. 이어 한국에서도 항일ㆍ독립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아버지의 한이 풀릴 것이라고 믿고 최근 2년간 독립유공자 인정에 마지막 인생을 걸었다.
영광씨의 부인은 한족인 왕위룽(王玉榮ㆍ62)씨이고 34, 32살의 두 아들은 명문 대학을 나왔다. 생활은 비교적 넉넉해 보였다. 중산층 아파트에 살며 매일 수영과 조깅을 한다는 영광씨는 “15일 독립유공자 표창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자 신청 등으로 바쁘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부인과 큰 아들의 얼굴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영광씨는 물론 두 아들도 “기회가 되면 한국어를 배우겠다”면서 “한국이 국민 모두가 잘살고 하루 빨리 통일이 이뤄지지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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