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조사 결과 전 안기부 불법도청조직 ‘미림’은 1960년대 중반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주 출입하는 업소의 종업원 등 ‘협조자’들을 특별 관리하며 이들에게 주요인사의 출입상황을 전해 듣는 원시적 수준에 머물렀다.
미림은 91년부터 전문적인 도청에 착수한다. 91년 7월 초 당시 국내담당 차장이 “기존 팀을 과학화해 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하자 담당국장은 “평소 활동력이 강한” 공운영(58ㆍ구속)씨에게 임무를 맡긴다.
1차 팀은 출범 초기 경험부족과 장비 불량으로 고전했으나 92년 초부터 팀원들이 장비에 익숙해지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협조자를 통해 주요 인사의 예약상황을 사전에 파악해 도청팀을 파견했고 현장 팀원들이 녹음 테이프나 메모를 모아오면 공씨가 호텔방 안가에서 혼자 종합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대상은 주요 정치인과 그 측근들이었는데 현장 작업 중 간혹 송신기가 들통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국장은 공씨에게 “당신이 공명심에서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처리하자”고 책임을 떠밀었고 이 때부터 공씨는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차 팀은 92년 대선 직전 “선거 정국에 사고라도 나면 큰 일”이라는 이유로 활동이 중단됐고 이듬해 7월 조직 개편과 함께 해체된다.
한직으로 밀려난 공씨는 94년 2월 새로 부임한 국내정보 담당 국장이 “승진 등을 봐줄 테니 경험을 살려 획기적으로 활동해보라”고 지시해 2차 미림팀을 조직한다.
주요 대상은 ▦97년 대선전 여당 내부의 동향 ▦김영삼ㆍ김대중씨 및 이회창씨 등 주요 정치인과 측근들의 동향 ▦주요기업의 빅딜 관련 내용 등이었다. 역시 올라온 자료는 공씨 혼자 정리했다. 1, 2차 팀 공히 초기에는 담당과장부터 계통을 거쳐 보고가 올라갔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장, 차장 등 윗선에 곧바로 보고됐다.
2차 팀 역시 97년 대선을 앞두고 “미림 활동이 오해받을 소지가 있고, 잘못되면 큰 부담이 된다”며 국장이 철수를 지시, 98년 4월 조직이 해체됐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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