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국정원)과 그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김영삼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 후반기까지 휴대폰 불법 도청을 해온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안기부 X파일 사태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전반에 메가톤급 후폭풍을 가져오고 있다.
국정원과 정보통신부 등 관계당국은 그동안 정치권등에서 제기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휴대전화 도청 논란과 관련, “이론적으로 도청이 가능하지만, 기술적인 어려움 등으로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맞서왔다. 하지만 김승규 국정원장의 5일 “과거사 고백”으로 국가정보기관의 불법도청이 확인된 만큼 도청 방식과 장비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기부와 국정원은 아날로그 휴대전화서비스가 이루어진 1990년대초 부터 휴대전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도청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옛 안기부 관계자는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는 음성이 부호화되지 않아 도청이 쉬웠다”고 말했다.
도청은 무선 상태인 전파로 날아가는 통화내용을 도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이 방법은 도청대상자가 머물고 있는 기지국을 중심으로 반경 200㎙이내에서 도청장비와 도청대상자가 동일한 통화영역(섹터)에 머물러야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도청대상자와 근거리에 위치해야 하며, 도청대상자가 움직이면 도청이 힘들어지는 제약이 따랐다.
안기부는 이를위해 당시 이탈리아로부터 감청장비 4세트를 수입해 도청업무를 시작했다. 안기부 시절 도청을 전담한 곳은 정문 맞은 편에 위치한 과학보안국이었다. YS시절 안기부 간부를 지낸 모 인사는 “8시간 3교대로 운영된 과학보안국의 도ㆍ감청팀은 잠시도 쉬지 않고 유선도청은 물론이고 야당 인사 등 정, 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호텔, 음식점, 요정, 룸살롱, 한정식 집 등에 종업원의 협조를 받아 도청장치를 실치했다”고 밝혔다.
이후 90년대 후반부터 부호가 암호화돼 도청이 어려운 CDMA 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아날로그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되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도청장비는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98년 5월부터 CDMA 방식에 대응한 유선중계 통신망 감청 장치 6세트와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치 등을 개발해 사용했다. 당시에는 8국이 감청을 담당했다. 속칭 ‘귀마개’로 불리던 감청팀 가운데 국내 담당 6과에서 40여명의 인원이 휴대폰 도청장치와 달리 유선중계 통신망 도청장비 등을 이용해 도청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정원은 2000년 9월부터 2.5세대 이동통신인 CDMA 2000 방식이 등장하면서 도ㆍ감청이 어려워지자 2002년 3월 관련 장비를 폐기처분하고 이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전 국정원 관계자는 “초대 이종찬 원장 시절에는 DJ의 지시로 도청을 하기 힘들었으나 천용택 원장 시절에 국정원이 정치적으로 움직이면서 도청도 본격화했다”며 “이후 정치권에서 국회가 열리기만 하면 도청의혹이 제기돼 신건 원장 시절에 8국이 폐지됐다”고 전했다.
이동통신 전문가들은 “CDMA 2000의 경우 CDMA와 기술 방식 및 사용 주파수 대역이 똑같아서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으나 데이터 용량이 늘어나고 전송 속도가 빨라져 현실적으로 도청이 쉽지 않지만, 첨단장비 개발로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도청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 도청과 감청
몰래 엿듣는다는 의미의 도청(盜聽)과 감시를 위해 듣는다는 뜻의 감청(監聽)은 사전적 의미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 의미는 사뭇 다르다. 간단하게 말하면 모든 도청은 불법이다. 법률상 요건을 갖춘 감청은 합법이지만 요건을 어기는 순간 도청이 돼 버린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법 규정에 위반해 전기통신을 감청하거나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행위’를 도청으로 규정해 처벌(16조)토록 하고 있다.
감청(2조 7항)은 ‘당사자 동의 없이 통신의 음향ㆍ영상 등을 청취해 내용을 지득하거나 통신을 방해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중죄에 한해 감청을 허가하고 있는데 모든 감청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리 영장을 받아야 하는 일반감청(6조)과 감청 후 36시간 이내에 사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긴급감청(8조)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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