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DJ 정부 후반기까지도 휴대폰 통화를 도청했다고 ‘고백’하면서 2003년 2월 팬택 계열이 개발해 출시 직전까지 갔던 ‘비운의 비화(秘話) 휴대폰’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팬택앤큐리텔은 2003년 2월 3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통신 사생활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비화폰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팬택계열은 그러나 미처 생각치 못했던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 결국 비화폰 출시를 포기하고 말았다.
당시 비화폰이 휴대폰 도청논란에 불을 지피자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업체들이 직접 ‘휴대폰 통신은 도청이 불가능하다’며 진화에 나선 것. 국정원도 ‘비화폰을 간첩이나 범죄자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묘한 논리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비화폰은 통화 중인 사람의 음성 신호에 복잡한 디지털 암호를 걸어,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로 만드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누군가 휴대폰 전파를 가로채거나 기지국의 장비를 해킹해 도청에 성공해도 이상한 잡음만 듣게 되지만, 같은 비화폰을 가진 통화 상대는 디지털 암호를 풀어내고 본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는 우리 국군의 유·무선 통신 장비에도 폭넓게 이용되는 일반화한 기술이다.
팬택앤큐리텔은 당시 암호 전문가인 포항공대 이필중 교수의 기술 지원을 받아 1년 여의 개발 기간을 거쳐 이 휴대폰을 완성했고 시제품도 생산했다. 제품 발표 당일에는 여러 사람이 휴대폰 통화를 하다가 비화 휴대폰을 가진 사람끼리 ‘비화 통화’로 전환하는 시범도 보였다.
2년이 지난 지금 휴대폰 도청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개발이 중단된 비화폰이 다시 햇빛을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팬택계열 등 휴대폰 업계는 “(비화폰은) 시장성이 없으며, 앞으로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에 모 업체가 비화폰을 제공했으며, 청와대도 비화폰을 사용했다”며 “제조 기술이나 시장성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 허가와 사회적 분위기, 국민 정서가 변수”라고 말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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