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ㆍ1절에 여운형 등 57명, 이번 8ㆍ15광복절에 47명. 모두 합쳐 104명의 사회주의운동 계열의 독립운동가가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게 되었다.
1995년 일제강점하 대표적인 사회주의운동가였던 이동휘가 서훈을 받은 이래 점차 그 폭이 조금씩 확대되어 왔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서훈에서 제외해야 할 대상자를 공산주의자에서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목적으로 한 활동에 주력했거나 적극 동조한 자’로 바꾸면서 많은 사회주의운동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보훈 대상자로 선정되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사회가 더욱 유연해지고 있다는 징표일 것이고, 남북한 체제우월경쟁에서도 자신감을 나타내는 정책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일제강점하 한국인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는 일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주권을 되찾는 것이었다. 항일운동에 뛰어든다는 것은 이 과제에 가장 충실한 선택이었다.
뿐만 아니라 각 국가와 민족의 주권을 짓밟는 제국주의 침략행위에 저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발전에도 순기능을 하는 선택이었다. 따라서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당시 한국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항일운동의 이념과 방법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일제강점하 독립운동의 이념에는 사회주의, 아나키즘, 사회민주주의, 자본주의 등 다양하였다.
사회주의도 조국의 광복이라는 절대 목표를 위한 선택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투쟁방법도 다양하여 학교를 세워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펜이나 총을 들고 항일운동전선에 뛰어든 사람도 있었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념적 잣대로만 재단(裁斷)하거나 줄세우기를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념적 금기로 인해 사회주의 운동가가 아닌데도 좌파 성향이 있다고 하여 서훈 대상에 제외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친일파를 서훈한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재심사를 통해 5명이 서훈을 박탈당했으며, 박탈 대상자에서 보류중인 사람이 5명이 있다고 한다.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옥석을 제대로 가리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사실적 접근을 우선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주의 운동가에 대한 서훈작업도 잃어버린 독립운동사의 반쪽을 다시 찾는 작업의 일환이다. 동시에 이념갈등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작업이며, 우리 사회가 냉전적 발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옥석을 제대로 가리기 위해서는 저항의 반대편, 곧 침략사에 대한 진상규명도 철저히 해야 한다. 서훈 대상자 선정과 관련하여 후자의 문제는 아직까지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보훈정책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제대로 찾아서 기리는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단된 사회에 살고 있다. 좌우대립이란 민족내부의 자해의 역사도 경험하였다. 따라서 역사의 발굴과 포상도 비극의 한국현대사로부터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더욱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되,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입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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