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종일 컴퓨터가 속을 썩였다. 게다가 저녁에 인터넷을 통한 문학교실 수업까지 있는 날이었다. 두 시간 동안 실시간 대화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아들의 안내를 받아 동네 PC방에 갔다. PC방 주인과 아들이 잘 아는 것을 보니 이 녀석이 단골도 보통 단골이 아닌 모양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컴퓨터 한 대씩 차지하고 앉아 아버지는 수업을 하고, 아들은 옆에서 연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남의 진지를 때려부수는 게임을 했다.
집에서, 또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서 함께 대화를 하는 것도 좋지만 아주 이따금 이렇게 부자가 저녁 시간 동네 PC방을 찾는 것도 제법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 곳에서 아들의 시중으로 간식과 음료수를 나누어먹는 맛도 새로웠다.
그런데 PC방을 나올 때 보니 입구에 컴퓨터 카메라로 찍은 아이들의 사진이 공개 수배자 명단처럼 주르르 붙어 있었다. 무슨 사진이냐니까 하루 종일 PC방에 와서 이것저것 시켜먹으며 놀다가 몰래 도망간 아이들이라고 했다.
“넌 그러지 마” 하고 다시 그 사진들을 보는데 거기에 30여년 전, 이따끔 친구들과 함께 시내 중국집에서 그랬던 그 시절의 내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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